[씨줄날줄] 팔방미인 허창수/박대출 논설위원

[씨줄날줄] 팔방미인 허창수/박대출 논설위원

입력 2011-02-19 00:00
수정 2011-02-19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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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신정(止愼亭) 허준(許駿). 구한말 영남의 만석꾼이다. 토지 800마지기를 농민에게 무상 배분했다. 나라 곳간이 비면 채웠다. 안희제가 만든 백산상회에 돈도 댔다. 경주 최부자로 불린 최준도 동참했다. 백산상회는 독립운동의 돈줄이었다. 한번은 아들 만정(萬正)을 불렀다. 학교를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돈을 어떻게 썼냐고 물었다. 아들은 “한번에 털어넣었습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칭찬했다. “잘했다. 돈은 그렇게 써야 한다.”

 이 학교가 경남 진주여고다. 허만정 등 10명이 민족 자본으로 세운 일신재단이 시초다. 원래 남학교를 세우려고 했다. 일제가 독립운동을 할까봐 방해하자 여학교로 돌렸다. 그러다 보니 6년 뒤인 1925년 4월 25일 개교됐다.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란 이름으로. 이를 기려 인터넷 주소를 ‘www.ilsin.hs.kr’로 쓴다. 당시 허만정이 낸 토지가 500석 규모란 기록도 있고, 1000석이란 기록도 있다.

 효주(曉州) 허만정은 의부(義富)였다. 남해대교 아래쪽에 충렬사가 있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다. 그는 이곳에도 돈을 보냈다. 일제 감시를 피해 이름 정(正)에 갓머리(宀)를 씌웠다. 백정 해방운동도 지원했다. 빨치산은 그의 의로움을 알기에 비켜갔다. 궁핍한 이웃에게는 쌀을 나눠줬다. 대신 인근 방어산에서 돌을 가져오게 해서 마당에 쌓았다. 유로유임(有勞有賃)의 실천이었다. 이 돌더미가 ‘금강산’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의 생가에 있다. 그곳에 가면 지신정이란 정자도, 효주공원도 구경거리다.

 한국 기업의 뿌리. 혹자는 허만정을 이렇게 부른다. 그는 삼성, LG 창업 때 종잣돈을 댔다. 6촌의 사위인 구인회 LG 창업주가 락희상회를 설립할 때는 3남 허준구를 참여시켰다. LG와 GS의 ‘아름다운 동업’은 57년 뒤 ‘아름다운 이별’로 이어진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삼성(三星)을 세울 때 ‘일성’(一星)이 된다. 장남인 허정구를 보냈다. 나머지 ‘일성’은 조홍제 효성 창업주다.

 허준의 증손자, 허만정의 손자가 전경련 회장이 됐다. 허창수 GS 회장. 그는 주식 기부로는 국내 ‘톱 5’에 든다. 소탈, 검소, 온화, 국제신사, 선 굵은 CEO 등. 언론의 인물평이다. 재계에서는 팔방미인으로 불린다고 한다. 아무래도 원조는 조부, 증조부가 아닌가 싶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기에. 허 회장이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궁금하다. 정경(政經)은 물론이고, 노사(勞使), 대·중소기업에서도 팔방미인으로 불려지길 기대해 본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2011-02-1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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