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 행정구역통합 주민의견이 중심돼야/하혜수 경북대 행정학 교수

[지방시대] 행정구역통합 주민의견이 중심돼야/하혜수 경북대 행정학 교수

입력 2010-02-23 00:00
수정 2010-02-2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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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혜수 경북대 행정학 교수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 교수
얼마 전 ‘키 180㎝ 이하 남자는 루저(loser)다.’라는 발언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루저의 의미는 단순히 생물학적 열등자, 경쟁력이 없는 패배자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열등자나 소외자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 올 4월 개봉 예정인 미국 영화 ‘루저’는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자’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추진 중인 행정구역 개편 과정을 보면서 주민들은 철저하게 루저의 지위로 떨어진 느낌이다. 구역 개편에서 주역이 돼야 할 주민들의 의견과 목소리는 희미한 대신, 정치적 계산으로 무장된 정치인들이 이를 주도하면서 ‘위너(winner)’의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다.

자율통합 방식의 구역 개편에서 행정안전부는 통합을 원하는 시·군의 신청을 받은 후 주민 여론조사에서 각각 50% 이상이 찬성할 경우 통합 대상으로 확정하고 지방의회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다수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은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할 뿐 지역과 주민의 미래를 위해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자신들의 공천권을 쥔 소속 정당이나 지역구 국회의원의 눈치살피기에 급급한 분위기였다.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통합 여론조사에서 다수 주민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소속 정당 등을 의식한 나머지 적극 나서지 못했고, 통합 결의에 동참 또는 거부하는 등의 극단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구역 개편의 키를 쥐고 있는 국회의원들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자율통합 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여론조사를 앞두고 자신들의 선거 조직을 동원해 찬성 여론을 큰 폭으로 낮추는 도술을 부렸는가 하면, 선거구 변경을 염려해 이미 선정된 통합 대상에서 해당 지자체를 제외시키는 내공을 과시했다. 심지어 특정 지역의 국회의원은 통합 반대 시위를 부추겼다고 한다.

선진국의 구역 개편에서는 주민이 중심이다. 1995년 대대적인 시정촌 합병을 시작해 2006년까지 3234개의 시정촌을 1821개로 합병한 일본의 경우 지역 주민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위해 통합 여부를 결정했고, 정치인들은 정치적 계산이나 개인적 이해 득실을 이유로 개입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 혹은 왜곡할 경우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낙선으로 보답받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1994년부터 1998년까지 173개의 카운티와 디스트릭트를 통합하여 100개의 단층 자치단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1~2곳을 제외하고는 정치인들의 이기적 저항에 의해 무산된 경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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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구역 개편에서 주민들은 철저히 소외되거나 버림받은 루저의 지위에 있다. 선거에서 정치인들의 정치적 계산이나 사익추구 행태를 단죄하지 못하는 주민 의식도 문제지만 정치인들의 선진화되지 못한 정치 행태가 더 큰 문제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주민투표를 통해 구역 통합을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장막 뒤에서 손을 쓰는 한 투표 참여(유권자의 3분의1) 요건을 채우지 못하거나 반대표가 더 많이 나올 것이고, 결국 주민의 의사는 묻히고 말 것이다. 주민 중심의 구역개편을 가로 막는 요인이다. 정치적 계산이 아닌, 주민과 지역의 미래를 위한 구역 통합이 아쉽기만 하다.
2010-02-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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