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위기극복 왜 환란때보다 어려운가/안미현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위기극복 왜 환란때보다 어려운가/안미현 경제부 차장

입력 2009-02-25 00:00
수정 2009-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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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보다 더한 위기라는데, 그래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이라는데, 왜 체감지수는 환란 때보다 덜해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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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현 문화부장
안미현 문화부장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과 은행이 아직 멀쩡해서다. 환란 때는 한보, 대우 등 이름있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지금도 수많은 중소기업이 쓰러지고 있지만 ‘대마불사’ 신화 붕괴가 가져왔던 극심한 공포감 정도는 아니다. 굳게 닫힌 철제 셔터문 앞에서 울부짖는 주름진 얼굴도 없다. 설사 내 돈, 내 일자리가 아닐지라도 남의 돈, 남의 일자리가 바로 내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똘똘 뭉치지 않으면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했다.

환란 때 일했던 고위공직자의 얘기다. “그때는 부지불식간에 강펀치를 맞고 쓰러지다 보니 솔직히 관(官) 입장에서는 편한 측면도 있었다. 일단 정부가 입을 떼면 일사불란하게 먹혀들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모두들 ‘머리’로는 위기라고 인식하면서 ‘몸’은 그렇지 못하다. 경쟁적으로 몸집을 부풀리다가 궁지에 몰린 은행들은 오히려 비상금(자본확충펀드)을 안 쓰겠다고 큰소리다. 당장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간신히 맞춰놓은 체력(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금방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누구보다 은행들 자신이 이를 잘 안다. 그런데도 일단 버티고 본다.

여기에는 외환위기 때와 다른 금융 상황도 한몫했다. 환란 때는 금리가 두 자릿수였다. 살인적인 대출이자에 가만 놔둬도 부실기업이 팍팍 쓰러졌다. 지금은 초저금리다. 기업도, 은행도, 어떻게든 조금만 버티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앞으로의 대기업 구조조정이 걱정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할 수 있게 ‘구조조정기금’이라는 퇴로를 만들려고 하는 만큼 국회도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되지만, 대기업들도 버티기로 맞서서는 안 된다. 종양(부실계열사)이 번지기 전에 과감히 잘라내고, 자산 매각 등을 통해 맷집을 다져놓아야 한다. 대기업이 흔들리는 순간, 국가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칠 수 있다.

확실히 ‘윤·진·식 팀’(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진동수 금융위원장,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은 전임 경제팀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무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전임자들보다 낫다.’가 새 경제팀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줘야 한다.

구조조정만 하더라도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살리기에서 죽이기로 갔다가 새 경제팀 들어 다시 살리기로 되돌아온 느낌이다. 부실채권만 사들였던 외환위기 때의 부실채권정리기금과 달리, 새 경제팀이 구상하는 구조조정기금은 부실기업은 물론 부실징후기업의 채권과 자산도 사들이는 구도다. 살리기와 죽이기를 동시에 하겠다는, 두마리 토끼 잡기 작전이다.

한 이코노미스트의 얘기다. “정부가 설사 살리기 구조조정으로 돌아섰다고 해도 나쁘지는 않다. 외부 충격에 의한 위기이고, 다른 나라들도 모두 자국 기업 살리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뱉은 대로 확실하게 구조조정을 하든가, 그러지 않으면 노선 변화를 공언하든가, 어정쩡하니까 시장이 작은 악재에도 심하게 출렁이고 (개인, 기업, 은행의)버티기가 횡행하는 것이다.”

정부나 경제주체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환란 때는 우리만 잘하면 됐다. 금붙이 내다 팔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고 나니 외국인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고 유럽이고 온통 곡(哭)소리다. 시쳇말로 비빌 언덕이 없다.

안미현 경제부 차장 hyun@seoul.co.kr
2009-02-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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