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삼성전자 사업장을 찾았다. 경기 기흥 공장과 수원 공장이었다. 반도체를 만드는 기흥공장은 전에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8월3일 초유의 정전사태가 발생한 직후였다.‘정전 1년’을 맞는 기흥공장은 지극히 평온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불안과 걱정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 조속한 라인 재가동을 위해 밤샘작업하던 삼성전자 임직원들도, 그 현장을 지켜보던 기자들도 앞으로 삼성에 닥칠 더 엄청난 ‘파고’를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상념이 밀려드는데 홍보영상 중에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새벽 3시의 커피타임’이라는 제목의 오래된 신문광고였다. 삼성전자가 1990년에 내보낸 광고였다. 반도체 개발에 정진하던 한 연구 책임자가 모처럼 팀원들과 차를 마시기 위해 각 연구실에 연락했더니 전원이 달려왔다고 한다. 한 연구원이 무심코 시계를 보니 그때가 새벽 3시였다고.‘새벽 3시의 커피타임’은 이 감동적 이야기를 광고로 옮긴 것이었다.
더 재미있는 대목은 그 다음이다. 광고가 나간 바로 다음날 아침, 고위임원이 홍보 책임자를 불러올렸다. 잔뜩 칭찬을 기대했던 이 책임자는 불호령을 들어야 했다.
“반도체를 빨리 키우려면 우수인재 확보가 최대의 관건인데 당신 같으면 새벽 3시에 커피타임 갖는 회사에 입사하겠느냐.”는 호통이었다. 그날 이후 이 광고는 두번 다시 실리지 않았다.‘딱 한번 빛을 보고 사라진 비운의 광고’였던 셈이다.
이는 숱한 반대를 뚫고 신(新)영역을 개척한 삼성의 반도체 역사에서 ‘미미한’ 한 토막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작은 일화가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요즘의 ‘삼성 상황’ 때문이리라. 특검 재판은 어제(20일)도 열렸다.1년 뒤 이맘 때쯤, 정전 1년의 기흥공장이 그랬던 것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진’ 삼성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안미현 산업부 차장 hyun@seoul.co.kr
안미현 문화부장
더 재미있는 대목은 그 다음이다. 광고가 나간 바로 다음날 아침, 고위임원이 홍보 책임자를 불러올렸다. 잔뜩 칭찬을 기대했던 이 책임자는 불호령을 들어야 했다.
“반도체를 빨리 키우려면 우수인재 확보가 최대의 관건인데 당신 같으면 새벽 3시에 커피타임 갖는 회사에 입사하겠느냐.”는 호통이었다. 그날 이후 이 광고는 두번 다시 실리지 않았다.‘딱 한번 빛을 보고 사라진 비운의 광고’였던 셈이다.
이는 숱한 반대를 뚫고 신(新)영역을 개척한 삼성의 반도체 역사에서 ‘미미한’ 한 토막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작은 일화가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요즘의 ‘삼성 상황’ 때문이리라. 특검 재판은 어제(20일)도 열렸다.1년 뒤 이맘 때쯤, 정전 1년의 기흥공장이 그랬던 것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진’ 삼성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안미현 산업부 차장 hyun@seoul.co.kr
2008-06-2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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