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명 중 11명만 아이돌이란 직업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에 감정이입을 하는’픽미 세대’ 청춘들은 올해 가성비 높은 ‘만능간장’ 만드는법을 숙지하고 ‘혼술’로 헛헛함을 때우며 이미 찾아온 ‘저성장 시대’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들엔 공통점이 있다. 개인화된 문화, 실용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범에 따른 현상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짚을 수 있다. 혼술부터 픽미까지 경제적으로 하나의 추세, 저성장을 저격한다. 공교롭게도 올해 두드러진 이 트렌드는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 고령화, 장기불황을 경험한 일본에서 ‘저성장 징후’로 묶였던 그 현상들과 닮은 꼴이다.
민간의 경제연구소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대 초반에 맞춘 반면, 정부는 23일 현재까지 ‘내년 3% 경제성장률 전망’을 고수하고 있다.
장밋빛 성장률 전망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정부. 내년에는 더 나을 것이라고 국민에게 희망도 좀 주고, 이렇게 되게 정책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자기충족적 예언’도 하느라 정부가 높게 성장률을 전망한다고 이해할 법도 한 대목이다.
하지만 정부가 성장률 전망을 ‘목표’ 혹은 ‘미션’으로 바꿔 생각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애당초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숫자를 ‘전망’이라고 써놓고 ‘미션’이라고 읽는다면 말이다.
국책연구기관들이 상반기 높게 잡았던 경제성장률 전망을 중반기 이후 낮은 방향으로 수정하는 일은 관례로 자리잡고 있다. 표에 제시된 4개 기관 중 한경연만 민간 연구원이다.
원래 국내총생산(GDP)은 덧셈과 뺄셈을 통해 집계된다. 민간소비, 정부소비, 투자, 수출을 더하고 수입을 뺀다. 추경은 정부소비를 확 늘려주고, 결국 GDP 숫자를 높여준다. 이렇게 집계된 GDP를 1년 전과 비교하면 성장률 (전망)이 나온다. 1년치 성장률(전망)은 4개 분기 성장률(전망)을 더해 계산한다.
반 년쯤 지냈는데, 2개 분기 성장률이 영 시원치 않으면 정부는 추경이란 카드를 만지작 거릴 수 있다.
그러나 추경 정책 카드엔 태생적인 약점이 있다. 재정건전성 약화, 이뤄져야 할 산업 구조조정의 속도 지연, 경제 체질의 악화가 그것이다.
추경이 정례화 되다시피 하면서 경제 연구소는 성장률 수치를 높이기 위한 추경의 목표에 대해 더 이상 쉬쉬하지 않는다. 2015년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주평’(왼쪽부터)은 ‘성장률 3% 위해 20조원 추경이 필요하다’며 GDP 개선을 위해 정부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개입주의와 추경편성의 유혹’에서 “정부지출을 늘리면 경기는 부양된다”고 단언한다. BS투자증권 박상규 이코노미스트는 1998~2011년 정부부문별 평균지출에 근거해 2013년 현재 10조원 규모 정부지출 증가는 명목GDP를 2.6%포인트 가량 상승시킨다고 추산했다.
2014년 7월 취임했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 정책처럼 말이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의 완화, 기준금리 인하 정책은 2015년 실제 경제 성장률은 3.3%로 전년(2.9%)보다 0.4%포인트 올릴 때 일조했다.
그러나 당시 정책은 2년이 지난 지금 가계부채 관리 위기, 금리정책 딜레마로 이어졌다. 강남 재건축 부동산은 이상 과열됐고, 신규 투자는 유발되지 않고 있다. 이같은 부작용을 개선할 정책 수단의 빈곤함은 새로운 차원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유일호(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현재 3.0%인 정부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대 초반까지 낮추진 않겠다. (내년 성장률이) 2% 초중반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내년 1분기가 지나면 그걸 보고 판단하겠다.“
이처럼 경제 관료들은 2017년이 오기도 전에 2017년 추경 예산안을 논하기에 이르렀다.
저성장 징후가 뚜렷한 한국경제에 대한 자기부정, 성장률 전망을 ‘미션’으로 바라보는 분열적 시각, 추경을 손쉽게 꺼내들 수 있는 무기로 여기는 안이함에 정부가 이미 중독된 것은 아닐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마치 족집게 과외를 통해 따낸 토익 고득점이란 ‘가짜 실력’이 외국인 앞에서 벙어리가 되는 ‘진짜 영어실력’을 은폐하듯이, ‘성장률 (전망) 마사지’가 지속되면서 실존하는 저성장의 여러 징후는 감춰지고 대책 마련은 늦춰질 수밖에 없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