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입장은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거칠게 표현하면 ‘하면 좋지만, 안 해도 할 수 없다’로 요약된다. 한국판 양적완화는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채권을 인수함으로써 구조조정 재원을 확충해주는 것인데, 이걸 정부가 추진하거나 강제하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뒤흔드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하지만 총선 뒤 곧바로 협의체가 본격 가동되는 등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입장을 바꿔 한국판 양적완화가 실행될 경우의 시나리오 검토에 본격 착수했다.
일단 정부는 안이한 운영으로 자기자본비율(BIS)을 깎아먹은 산은과 수은의 인력·조직 개편 및 자회사 정리 등의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요구하면서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적정 규모의 자본확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재정을 투입하는 것보다 한은이 새로 돈을 찍어 출자나 채권 인수 등의 형식으로 지원해주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큰 규모의 재정 투입을 위해서는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해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추가경정예산편성(추경)과 달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로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29일 국회를 방문한 유 부총리는 “중국 성장률이 5% 이하로 갑자기 뚝 떨어진다든가,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수준으로 가서 수주가 안된다든가, 해외 건설도 하나도 안되고 이러면 경기하강 요인이 될 수 있고 추경이 될 수 있다”면서 “지금은 그런 게 보이진 않고, 조선업 구조조정 때문에 경기가 대폭 침체될 것이라고 판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또 “추경이 필요하다면 죽어도 못한다든가 그것은 아니다”면서도 “법을 지켜야 하니까 추경 요건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정부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고 전방위적 산업 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를 위해선 넉넉한 ‘실탄’(유동성) 확보가 필요하다. 정부가 국책은행에 현물·현금을 출자하는 것만으로는 구조개혁 과정에 필요한 재원 확보가 충분치 않을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과 통화(한국판 양적완화)가 함께 가면 ‘폴리시 믹스’(정책 조합)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도 “정부 측에서 추진하거나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2016-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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