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벗어나 질 위주로 변하라”… 신경영 선언 후 추격자서 선도자로

“양 벗어나 질 위주로 변하라”… 신경영 선언 후 추격자서 선도자로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20-10-25 22:30
수정 2020-10-26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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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바꾼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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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이 2008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지하 1층 국제회의실에서 특검 수사결과에 따른 삼성그룹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서울신문 DB
이 회장이 2008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지하 1층 국제회의실에서 특검 수사결과에 따른 삼성그룹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서울신문 DB
신경영 선언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계열사 사장단 200여명을 불러놓고 ‘신경영’을 선언하며 이같이 일갈한 일화는 삼성에 혁신 DNA를 불어넣은 전환점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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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7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발표를 듣고 이 회장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11년 7월 7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발표를 듣고 이 회장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해 2월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 일본 도쿄,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4개월간 해외 시장 순방 출장에 나선 그는 로스앤젤레스 유통매장 구석 한쪽에 먼지를 머리에 이고 외면당하는 삼성 TV를 보고 대노했다.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통탄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에선 세탁기 조립 라인 직원들이 세탁기 덮개 여닫이 부분의 규격이 안 맞아 닫히지 않자 즉석에서 덮개를 칼로 깎아 조립하는 모습이 담긴 품질 고발 사내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하라”고 주문한 ‘신경영’ 선언이 나온 배경이다. 이어 그해 6월부터 8월 초까지의 대장정 이후 이 회장은 사장단, 국내외 임원 등 1800여명과 회의 등을 열었고 당시 대화시간은 350시간, A4 용지 8500매에 이르렀다. 당시 신경영 선언으로 1993년 D램 하나뿐이던 삼성의 ‘월드베스트’(세계 시장 1위) 제품은 20년 뒤인 2012년 20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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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이 지난 2004년 방호복을 입고 삼성전자 반도체 설비 시설을 찾은 모습.  삼성 제공
이 회장이 지난 2004년 방호복을 입고 삼성전자 반도체 설비 시설을 찾은 모습.
삼성 제공
반도체 강국

우리나라가 지금의 ‘반도체 강국’으로 자리하는 데도 고인의 추진력이 있었다. 1974년 그가 파산 직전의 한국 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하자 회사 안팎에서는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 일본보다 20~30년 뒤처졌는데 따라가기가 되겠느냐”며 반대하고 나섰다. 198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도 “불가능하다”고 했을 정도로 반도체 사업은 ‘공상’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회장은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느냐.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 한다. 제 사재를 보태겠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들을 만나고 엔지니어를 찾아 미국 실리콘밸리를 50여 차례 드나들며 인력 확보에 나섰다. 1984년 세계 반도체 시장이 극심한 불황으로 위기를 맞고 삼성도 반도체 사업에서 1000억원 정도의 막대한 영업손실을 봤을 때도 “위기는 곧 기회”라며 오히려 설비투자를 대폭 늘리는 등 노력 끝에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을 만들었다.

무선전화 15만대를 불태운 ‘애니콜 화형식’은 삼성에 ‘품질 경영’을 뿌리내리게 한 계기였다. “불량은 암”이라고 했던 이 회장은 양보다 질을 강조한 지 1년이 지나도 불량률이 여전히 11.8%에 이르자 “적자 내고 고객으로부터 악평을 받으면서 이런 사업을 왜 하는가. 삼성에서 수준 미달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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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삼성전자 한 직원이 삼성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무선전화기, 팩시밀리 등 불량제품 15만대를 전량 폐기 처분하는 ‘화형식’을 치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1995년 삼성전자 한 직원이 삼성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무선전화기, 팩시밀리 등 불량제품 15만대를 전량 폐기 처분하는 ‘화형식’을 치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불량품 화형식

그는 1995년 1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가정용 무선전화 15만대(150억원어치)를 쌓아놓고 불도저와 해머로 산산조각 낸 뒤 불태웠다. 당시 무선부문 이사였던 이기태 전 삼성전자 사장을 포함해 임직원들은 제 손으로 만든 제품이 불타는 걸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사건은 삼성 스마트폰이 세계 시장 1위로 우뚝 서는 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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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자동차 마니아인 이 회장이 주위의 만류에도 밀어붙였던 자동차 사업은 실패로 끝나 오점으로 남았다. 1995년 현대·기아·대우·쌍용 등으로 포화상태인 차 시장에 진출했다가 1999년 삼성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4조원 이상)를 내고 사업을 접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20-10-2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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