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정건전화법 입법 추진하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는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대내외 안팎의 시각이다.다만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데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나라 곳간에 들어오는 돈은 크게 늘지 않지만 복지지출 등 나가는 돈은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1인당 국가채무는 지난해 1천246만원이나 2020년에는 300만원 가까이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장기 재정 건전성을 위해 재정건전화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아직은 양호한 수준이라지만…문제는 ‘빚의 속도’
한국의 재정 상황은 아직 다른 나라와 견줘 양호한 편이다.
2015년 기준 중앙·지방정부 부채에 비영리공공기관 부채를 더한 일반정부 부채(D2)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4.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5.5%를 크게 밑돈다.
일본(230%), 프랑스(120.8%), 영국(112.8%), 미국(113.6%), 독일(78.7%) 등에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총수입에서 총지출, 사회보장성기금 등을 빼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GDP 대비 2.4%로 OECD 평균(3.0%)보다 작다.
그러나 문제는 속도다.
국가채무는 경제 규모보다 더 빨리 불어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지방정부 부채인 국가채무(D1)는 638조5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7.9% 늘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경제 성장률인 경상 성장률 전망치는 4.0%다. 빚의 속도가 경제 규모보다 2배 가까이 빨리 늘어난 것이다.
빚의 속도는 2011년부터 쭉 경상 성장률을 웃돌고 있다.
국가부채 증가율은 2011년 7.2%, 2012년 5.4%, 2013년에는 무려 10.5%로 확대됐다.
2014년 8.9%, 2015년에는 10.9%까지 늘었다.
이 사이 경상 성장률은 3.4%∼5.3%에 그쳤다.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경상 성장률보다 매년 1.9∼6.7%포인트 높았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의 경우 2010년 한국은 1.0% 적자로 OECD 평균(7.9% 적자)보다 6.9%포인트 낮았으나 이후 격차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과 OECD 평균과의 격차는 불과 0.6%포인트밖에 되지 않는다.
1인당 국가부채는 지난해 기준 1천246만원으로 2008년(630만원)에 비해 거의 2배가 됐다.
국가채무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은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하며 줄이기 힘든 복지지출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빚을 내 돈을 빌려 추가경정예산을 쓰고, 그런데도 경제 성장세가 완연하지 않아 정부가 다시 경기 보강 카드를 꺼내 드는 악순환에 빠져서이기도 하다.
최근 정권 들어 이어진 대대적인 감세 정책, 증세 없는 복지 대책도 나라살림 악화를 부채질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감세 정책을 추진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하면서 국가채무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꼬집었다.
◇ ‘앞으로가 더 걱정’…1인당 국가채무 2020년엔 1천527만원
문제는 앞으로도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데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의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국가채무는 2018년 722조5천억원으로 700조원을 돌파하고 2020년에는 793조5천억원으로 800조원 문턱까지 늘어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7년 40.4%로, 40%대를 돌파하고 2018년 40.9%까지 치솟았다가 2019∼2020년 40.7%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1인당 국가채무는 2017년 1천327만원, 2018년 1천399만원, 2019년 1천461만원, 2020년 1천527만원까지 불어난다.
국가채무를 늘린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저출산 고령화는 앞으로도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할 사람이 줄어들다 보니 세수 여건은 악화하는데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노후소득, 건강보장에 대한 재정 수요는 지속해서 늘어나 정부 재정을 압박할 전망이다.
정부의 재정 관리는 한층 힘들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가 마음대로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 비중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의무지출은 공적연금, 건강보험 등 법에 지급 의무가 명시돼 있다.
전체 재정지출 중 의무지출 비중은 지난해 추경안 기준으로 46.8%였으나 점점 높아져 2019년에는 50.2%로 절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나머지 재량지출만으로 재정건전성을 관리해야 해야 해 한층 까다로워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재정에 부담을 주는 요소가 있는 경우 재원 조달 방법을 함께 마련하고 국가채무를 국내 GDP의 45%, 관리재정수지는 GDP 대비 3% 내로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재정건전화법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 예산 편성권을 정부가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데다 최근 정국 혼란과 맞물려 논의마저 뒷전으로 밀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백웅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상명대 교수는 “재정건전화법 입법이 상당히 중요한 시점”이라며 “페이고를 강화하고 재량지출을 줄이도록 하면 불요불급한 지출은 자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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