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인데 물가만 껑충…한국 ‘스태그플레이션’ 빠지나

불황인데 물가만 껑충…한국 ‘스태그플레이션’ 빠지나

입력 2017-01-09 11:34
수정 2017-01-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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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아직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보기엔 이르다”

유통팀 = 이어지는 경기 불황 속에서 농축수산물과 일부 생필품의 가격이 크게 뛰자 일각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스테그네이션(stagnation·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 상승)의 합성어로, 보통 경기가 나쁘면 수요 부족 등으로 물가가 떨어지는 것과 반대로 경기가 안 좋은데 물가까지 뛰는 비정상적 ‘이중고’ 상태를 말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 내수와 생산 위축에 경제 성장률은 계속 내리막인데도 농축수산물 등 생활물가가 급등하고 유가까지 반등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소비)가 크게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에, 일부 품목의 물가 상승이 전체 공산품과 외식 등 서비스업의 본격적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의견이 아직 우세하다.

◇ 성장률은 떨어지는데…주요 농축수산물·소비재 2~3배까지 뛰어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1.3% 올랐다. 앞서 작년 5~8월까지 0%에 머물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9월(1.2%) 1%를 넘어서더니 10~12월 3개월 연속 1.3%를 기록했다.

여전히 정부의 물가 관리 목표(2%)를 밑도는 수준이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물가가 눈에 띄게 오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구나 서민 생활과 밀접한 생활물가, 장바구니는 더 크게 뛰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가격통계(KAMIS)에 따르면 6일 자 기준으로 무(평년의 2.4배), 양배추(2.1배), 당근(2.2배), 계란(2배) 등 평년(직전 5년) 평균 가격의 2~3배로 치솟은 품목이 적지 않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라면, 콜라, 맥주 등의 가격이 5~10% 올랐고, 소면·씨리얼·건전지·빙과·과자 등 등도 최근 6개월 사이 20~30% 뛴 상태다.

여기에 유가 동향도 심상치않다.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5일 전국 1만1천여개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평균 가격(1천500.44원)은 1천500원을 넘어섰다.

작년 3월 초 1천399원으로 바닥을 친 휘발유 평균 가격은 최근 국제유가 상승과 더불어 지난해 11월 26일 이후 줄곧 오르고 있다.

환율도 물가 상승의 잠재적 불안 요인이다.

금리 인상 등의 미국의 긴축 정책으로 ‘강(强)달러’ 기조가 이어질 경우 현재 1천200원대까지 오른 원/달러 환율은 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소비자들이 같은 가격의 수입품을 과거보다 더 많은 원화를 주고 사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물가 상승 압력은 커지는 반면, 국내 경기는 계속 내리막을 걷고 있다.

이미 정부는 1999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대(2.6%)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2%대 초중반을 예상하는 민간경제연구기관 등으로부터 ‘너무 낙관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다.

올해 성장률이 실제로 2% 초중반에 그치면, 한국 경제는 2015년(2.6%)과 작년(한은 2.7% 예상)에 이어 3년 연속 2%대 성장에 머물게 된다. 전체 산업생산도 지난해 9월, 10월 계속 뒷걸음질하다가 11월 들어서야 다소 반등한 상태다.

◇ “아직 스테그플레이션 이르지만…체감물가만 오르면 불황 심해져”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체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언급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산물 등 일부 품목의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 전반의 수요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당장은 물가 상승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했다.

농산물이나 유가 등 재료 부문의 물가 상승이 완제품과 서비스 가격을 밀어올리는 식의 ‘물가 도미노(연쇄) 상승’ 조짐이 보이면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겠지만, 워낙 소비가 위축된 상황이어서 아직까지는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소비자들에게 재료 물가(비용) 인상 부분을 가격을 통해 떠넘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스스로 물가 충격을 흡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강 위원은 유가에 대해서도 “한 때 국제 유가가 급락했다가 최근 다소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물가 상승 조짐이 비정상적으로 떨어졌던 물가가 회복하는 리플레이션(reflation) 과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리플레이션은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 하락)에서 벗어나 심한 인플레이션까지는 이르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많이 떨어진 물가가 반등하는 리플레이션으로 본다”며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 정도였는데, 올해의 경우 1.7%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팀장은 “농산물 등 일부 품목의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조류인플루엔자(AI)나 설 특수 등 계절 요인이 작용하는 부분이 있고, 환율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역시 가파른 상승세가 아니라면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내수 경기가 아직 좋지 않아서 공산품이나 서비스 물가가 당장 크게 오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기 측면에서도 아직 내수는 침체 상태이지만 수출이 개선되고 있어 작년보다 올해보다 나을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역시 “현재 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인 2%와 다른 선진국보다 낮고, 최근 물가가 식료품과 공공요금 중심으로 올랐을 뿐 공산품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이 약해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생활 물가 급등 등으로 현재 경제 상황이 전반적으로 순탄하지 않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성 교수는 “(보통 경기 불황에서 나타나는)디플레이션의 문제는 그대로 지속되면서, 필수적 재화의 가격상승으로 체감 물가만 더 악화되면 구매력이 나빠지기 때문에 (경기 불황) 상황은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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