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롯데…일본 임원·주주 영향력 커지나

혼돈의 롯데…일본 임원·주주 영향력 커지나

입력 2016-09-01 09:10
수정 2016-09-0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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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롯데 상장 눈앞에 두고 檢수사로 무산…한국화 기회 상실

롯데가 그룹 창립 70년(일본 롯데 기준)만에 최악의 경영 공백 사태를 맞고 있다.

오너가(家)에서는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이 정신건강 문제로 후견인(법률대리인)이 필요하다는 법원 판결을 받았고, 경영권 분쟁 중인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 회장 모두 그룹 비리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로서 검찰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았거나 출두가 임박한 상태이다.

전문경영인 중에서도 그룹 2인자인 이인원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부회장의 뒤를 이을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이 비자금 수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 사건 등으로 구속되거나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 일각에서는 이 와중에 롯데의 일본 경영진과 주주들의 영향력만 커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오너가 지분 과반 안돼…일본 경영진 등 돌리면?

알려진 대로 한·일 롯데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이자 지배구조의 정점은 일본 롯데홀딩스다. 홀딩스는 현재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의 지분도 19% 정도 갖고 있다.

현재 이 홀딩스의 주요 주주와 지분율은 ▲ 광윤사(고준샤·光潤社, 28.1%) ▲ 종업원지주회(27.8%) ▲ 그린서비스·미도리상사 등 관계사(20.1%) ▲ 임원 지주회(6%) ▲ 투자회사 LSI(롯데스트레티지인베스트먼트, 10.7%) ▲ 신격호 총괄회장 포함 가족(10% 안팎) 등으로 알려졌다.

롯데홀딩스와 상호출자 관계로 의결권이 없는 LSI를 제외하면 광윤사(28.1%)와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 및 임원지주회(20.1+6%)가 3분의 1씩 지분을 고루 나눠 가진 셈이다.

주요 주주 가운데 광윤사는 신격호 총괄회장과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重光初子)씨, 신동주·동빈 형제가 100% 지분을 소유한 ‘가족기업’이다.

광윤사에 이은 2대 주주 종업원지주회는 10년 이상 근무한 과장 이상 직원 130여명으로 이뤄졌는데 각 회원이 의결권을 개별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의 의결권을 위임받은 종업원지주회 대표(이사장) 1명이 주총에서 표를 던진다.

임원지주회의 경우 롯데홀딩스의 정책 집행을 맡은 ‘컨트롤타워’로서 홀딩스 관계사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큼 관계사와 임원지주회는 대부분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결국 가족(광윤사), 직원(종업원지주회), 임원 및 관계사 3개 주요 주주군(群) 가운데 두 곳만 내 편으로 끌어들이면 누구라도 한·일 롯데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

문제는 신씨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확실하게 절반을 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인 신동주·동빈 형제의 개인 지분이 각각 1.62%, 1.4%로 매우 미미한 데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맏딸 신영자 롯데문화재단 이사장 등의 지분까지 포함해 신씨 오너가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10%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여기에 역시 오너가의 가족회사인 광윤사 지분(28.1%)을 더해도 40% 정도로, 신씨 일가가 지금처럼 분열하지 않고 단합해도 과반에 이르지 못하는 구조다. 따라서 지금은 신동빈 회장의 편에서 종업원지주회, 임원지주회, 관계사의 지분을 결속하고 관리하고 있는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홀딩스 사장 등 일본인 경영진들이 만약 신씨 오너 일가가 다수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품을 경우 롯데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증권사 보고서 등에 따르면 쓰쿠다 홀딩스 사장, 카와이 카츠미(河合克美) 홀딩스 전무, 고초 에이이치 홀딩스 이사 겸 일본 롯데물산 대표 등 일본롯데 주요 경영진은 미도리상사, 패미리, 그린서비스 등 홀딩스 주주인 일본 롯데 계열사 지분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이런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의 한국 사업 규모가 훨씬 더 큰데,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 롯데의 한국 영업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아무리 검찰 수사로 오너 일가 공백이 커져도 일본 경영진이 그런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고, ‘일본기업화’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크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 호텔상장 재추진 난망…‘일본 주주 99% 지배’ 그대로

하지만 경영권이 일본에 완전히 넘어가는 극단의 경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번 검찰 수사의 영향으로 호텔롯데 상장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면서 롯데 입장에서 일본 주주의 영향력을 줄이고 ‘일본기업’ 논란에서 벗어날 기회를 일단 한 차례 놓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6월초부터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와 롯데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에 대한 강도 높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롯데는 당초 6월말로 예정된 호텔롯데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신동빈 회장은 “연말께 재추진”을 언급했지만, 현재까지 수사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여의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호텔롯데 상장을 경영권 분쟁 이후 ‘롯데 개혁’의 제1 과제로 정하고 밀어붙였던 신동빈 회장이 향후 사법처리 등으로 자리를 비울 경우, 사실상 호텔롯데 상장은 영원히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신동빈 회장이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기대한 가장 큰 효과는 수조원의 공모자금이 아니라 ‘국적 논란 해소’였다는 게 다수 롯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현재 호텔롯데는 롯데쇼핑(지분율 8.83%), 롯데알미늄(12.99%) 롯데리아(18.77%) 등의 주요 주주로서 사실상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신동빈 회장이 대표이사로 등기된 12개 L투자회사들(지분율 72.65%)이고 여기에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19.07%)까지 더하면 사실상 일본 롯데 계열사들이 호텔롯데 지분의 99% 가까이 장악하고 있다.

결국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호텔롯데를 다시 일본 롯데가 지배하는 셈으로, 현재 구조를 유지할 경우 롯데는 ‘일본 기업’ 논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이후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한·일 롯데 계열사들의 지분 구조가 처음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후 롯데는 끊임없이 국적 시비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상장 이후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롯데는 당초 기업공개(IPO)를 통해 전체 호텔롯데 주식의 35%를 개인·기관투자자에 내놓을 예정이었다. 25%는 신주를 발행하고, 10%는 기존 대주주 보유 지분을 매각(구주매출)하는 방식의 공모를 꾀했다.

이 계획대로 공모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호텔롯데에 대한 일본계 주주의 지분율은 결과적으로 98%에서 65%까지 떨어진다.

아직 여전히 일본계 주주들의 영향력이 크지만 예전처럼 롯데 일본 계열사(투자회사 포함)들이 전적으로 호텔롯데의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게 된다.

더구나 홀딩스 지분율이 1%대로 미미한 신동빈 회장 개인의 경영권 측면에서도 일본 주주의 영향력을 줄이는 작업은 큰 도움이 된다.

상장 후에는 의무적으로 외부감사를 받고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금융감독원 등에 제출해야하는 만큼 기업 경영과 지배구조의 투명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앞서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도 “중장기적으로 일본 주주 비중을 50% 아래로 낮추고 일반 주주의 지분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늘리겠다”며 ‘일본색’ 탈피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일각에서는 호텔롯데 상장 직전 구주매출(기존 주주 보유분 매각)을 통해 일본 주주들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다는 식의 ‘국부 유출론’도 제기됐으나 상장에 따른 지배구조 개선 효용이 훨씬 크다는 게 롯데와 전문가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이 때문에 일본인 주주들이 한국롯데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드는 호텔롯데 상장을 반대하지 않을까 우려했고, 신동빈 회장 등 경영진이 일본에서 설득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지배구조연구실 연구위원은 “일본 기업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지배구조에 대한 부분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호텔롯데 상장 등 지배구조 개선을 미루지 않고 추진해야하는데, 이 부분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영권 분쟁도 더 미궁에 빠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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