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고발 4년 지나서야 검찰 수사 본격화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이 원료의 유독성을 알고도 제품을 판매해 온 사실이 4년 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때 이미 드러난 것으로 나타났다.올해 1월 특별수사팀을 꾸린 검찰 수사의 핵심 중 하나는 가습기 제조업체들이 인체 유해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다.
좀 더 일찍 수사에 나섰다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앞당길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 8월 낸 ‘옥시레킷벤키저의 부당한 표시행위’에 대한 의결서를 보면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유해물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 조사에서 옥시는 PHMG를 먹거나 흡입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적힌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MSDS는 화학 물질을 거래할 때 첨부하게 돼 있는 자료다.
의결서에서 공정위는 “피심인 회사(옥시)가 제품 원료에 대한 MSDS 내용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원료 공급자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옥시에 MSDS 등 원료 정보가 이미 제공됐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조사에 참여한 공정위 관계자는 ▲PHMG 제조업체인 SK케미칼 ▲원료 도매상 ▲가습기 살균제 제조를 위탁 제조한 한빛화학 ▲옥시 순서로 단계마다 MSDS가 전달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MSDS에 ‘마시거나 흡입하지 말라’는 기록이 있는데, 옥시가 이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며 “실제로 옥시가 MSDS 자료를 갖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옥시는 최근 검찰 조사 과정에서 압수수색에 대비해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1년치의 MSDS를 통째로 폐기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공정위는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면서 제품 용기에 안전하다고 허위 표시를 한 옥시 등에 2012년 7월 과징금 5천200만원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나서다.
가습기 살균제가 사망의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는 2011년 8월에 나왔고, 공정위가 이듬해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이 원료 유독성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일차적으로 확인했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불복한 옥시의 소송에 대해 대법원도 작년 2월 옥시 패소 판결을 했다. 그런데도 진상 규명이 계속해서 늦어진 셈이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에 대한 공식 발표가 지난해 8월에야 나왔기 때문에 그 이전에 수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정부 관계자는 “검찰이 왜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검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관계자를 처벌했다면 논란이 이토록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최근 공정위에서 당시 사건 관련 자료를 추가로 받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