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I 보유 물산 지분 블록딜 가능성 높아…대주주나 우호세력에 매각 가능성도
공정거래위원회가 27일 옛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 간 합병으로 인해 강화된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자 삼성 측은 일단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삼성 관계자는 “공정위 해석 내용은 예상치 못한 것이지만 큰 흐름에서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정위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 해석에 따르면 옛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총 10개에서 7개로 감소했지만 3개 고리는 오히려 순환출자가 강화됐다.
합병 전을 기준으로 삼성SDI는 순환출자 방식으로 옛 삼성물산 지분 7.2%(400만주)를 보유했다. 별도로 옛 제일모직 주식 3.7%(500만주)도 갖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옛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이 합병, 삼성SDI가 보유한 지분이 900만주로 증가했고 늘어난 500만주 만큼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따라서 합병에 의해 순환출자가 강화된 부분을 6개월의 처분 유예기간 내에 해소하라는 것이 공정위 입장이다.
옛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이 지난 9월 1일을 기해 합병한 만큼 6개월이 되는 시점인 오는 2월 말까지 삼성SDI가 보유한 옛 제일모직 주식 500만주, 즉 통합 삼성물산 지분 2.6%를 매각하라는 것이다.
큰 틀에서 공정위 입장을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삼성SDI는 보유 중인 삼성물산 지분 매각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SDI가 보유 중인 삼성물산 주식을 매각하더라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는 별 영향이 없다는 점이 공정위 입장 수용 배경으로 보인다.
통합 삼성물산은 사실상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그룹 경영 계승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6.5%의 지분을 보유하는 등 대주주 특수관계인(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30%가 넘는다. 2.6%의 지분은 경영권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인 셈이다.
삼성은 다만 공정위의 가이드라인 제시가 늦어지면서 당장 처분 유예기간인 2월 말까지 2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만큼 기간을 연장해줄 것을 공정위에 요청할 예정이다.
삼성 관계자는 “2월 말까지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처리해야 하는데 시장 충격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대책을 강구해 보겠다”면서 “다만 처분 기간이 얼마남지 않아서 해소기간 연기를 공정위에 요청해 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매각하게 되면 합병 이후 가뜩이나 약세를 보이는 삼성물산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식 출범을 전후로 18만원에 육박했던 통합 삼성물산 주가는 지난 24일 기준 14만5천500원까지 떨어졌다.
500만주에 달하는 물량을 처리하는데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블록딜(시간외 주식 대량매매) 방식이 떠오른다.
이 경우 매각주간사를 선정하고 딜 상대방을 찾아야 하는데 2월 말까지 서둘러 팔게 될 경우 제값을 받지 못하고 헐값에 삼성물산 지분을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상의 블록딜 방식은 시가에 비해 주식을 다소 싸게 넘기는데 현재 삼성물산 주가 자체가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추가 할인할 경우 삼성SDI의 손해가 커질 수도 있다.
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SDI 보유 물량을 떠안거나 우호 지분을 갖고 있는 KCC 등에 매각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경우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에 3천억원 한도로 참여하겠다고 밝히는 등 신경써야 할 다른 계열사가 많은 상황이고 다른 기업이나 펀드 등이 현재 실적이 좋지 않은 삼성물산 지분을 받아주기도 쉽지 않다.
하이투자증권 이상헌 연구원은 “블록딜 방식으로 시장에 내다팔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이재용 부회장이나 다른 우호세력에 팔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다만 하루 정도는 주가에 영향을 주겠지만 중장기적으로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