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위기 대응 빨라졌다…“변명하다 더 큰 역풍”

재계 위기 대응 빨라졌다…“변명하다 더 큰 역풍”

입력 2015-12-27 10:22
수정 2015-12-2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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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롯데 총수 나서 적극 사과…쿠팡 대표는 “갑질논란 처음 들어”

“변명하거나 억울한 부분만 강조하다가 오히려 부정적 여론을 키우고, 시간을 끌다 결국 기업 경영 전반이 타격을 받는 사례를 여러 차례 목격했기 때문이죠.”

김만식(76) 몽고식품 명예회장이 ‘운전기사 상습폭행’ 관련 폭로가 나온지 불과 하루 만인 24일 회장직에서 전격 사퇴하고 대표이사 명의 사과문까지 발표하는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선 배경에 대해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한해 재계 주요 업체들은 전반적으로 각종 사건·사고 등 ‘위기 상황’에 예전보다 신속하게 움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총수가 직접 국민 앞에 나와 머리를 숙이는 일도 흔해졌다.

◇ 한화·호텔신라 ‘신속조치’…삼성·롯데 ‘대국민 사과’

지난 7월 3일 오전 한화케미칼 울산 2공장 폐수처리장에서 협력업체 직원 6명이 숨지고 경비원 1명이 부상하는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김승연 그룹 회장이 같은 날 오후 곧바로 유감의 뜻을 밝히고 희생자들에 임직원에 준하는 최대한의 보상과 진상 조사를 지시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불안으로 전국이 술렁이던 6월, 확진 환자 한 명이 제주 신라호텔에 묵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자마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제주 현장으로 내려가 지체없이 영업 중단을 지시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같은 달 23일 삼성서울병원의 허술한 메르스 방역과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공식 기자회견을 자청해 그룹을 대표해 직접 사과문을 읽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 이송직원의 메르스 확진 이후 국회에서 “삼성서울병원이 뚫려서 메르스 전파자가 나왔다”는 지적이 나오자,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이 “(삼성서울병원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반박한 지 12일 만이다.

“삼성이 책임을 회피한다”는 여론이 커지자 실질적 그룹 총수인 이 부회장이 몸소 진화에 나선 셈이다.

경영권 분쟁으로 기업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롯데그룹에서도 신동빈 회장이 직접 수습을 지휘했다.

7월말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노골적 경영권 다툼이 알려진 뒤 보름만에 신동빈 회장은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서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호텔롯데 상장 등 꽤 구체적인 대책들을 국민 앞에 내놓았다.

5대그룹 총수로서는 처음 직접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 장시간 쏟아지는 질의에 일일이 답변하는 곤욕도 치렀다.

재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지난해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당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사과를 계속 미적거린데다 대한항공측도 사건 초기 ‘승무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엄청난 여론 역풍에 직면한 사실이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위메프·쿠팡·LG생건·롯데주류…버티기·모르쇠

하지만 더디고 미숙한 대응으로 오히려 비난을 키우고 기업 이미지를 구긴 사례도 여전히 많았다.

소셜커머스업체 위메프(대표 박은상)는 지난해 12월 지역 영업직 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최종전형에 오른 11명에게 2주동안 ‘거래(딜·deal)’를 따게 하는 등 정직원에 준하는 일을 시키고 전원 불합격 처리해 ‘채용갑질’ 논란을 불렀다.

논란 초기에 위메프는 줄곧 “채용 테스트 결과 모두 기준에 맞지 않아 불합격 처리된 것인만큼 문제가 없다”는 설명만 반복하다가 결국 ‘불매운동’과 함께 회원(고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올해 1월 탈락자 전원을 합격 처리했다.

하지만 위메프는 박은상 대표 명의 사과문에서 ‘견지망월(見指忘月·달을 보라고 했더니 손가락만 본다)’이라는 고사를 인용하며 ‘오도된 여론에 밀려 억울하다’는 여운을 남겨 진정성 없는 사과의 전형을 보였다.

또 다른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의 김범석 대표는 부정적 여론이나 문제 지적에 대해 모르는 척 무시하는 전략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9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국정감사에 일반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농구를 하다 다쳤다”며 출석을 거부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회사로 정상 출근을 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 국적 미국인이라 한국 국회를 무시하는 것이냐”는 비난을 받았다.

더구나 김범석 대표의 쿠팡은 당시 협력업체에 독점공급을 요구한 사실 등으로 ‘갑질’ 논란에 휩싸였던 터라, 국회와 여론의 문제 지적에 대해 최소한의 해명 의지조차 없는 기업으로 각인됐다.

김 대표와 쿠팡은 이후 지금까지 한 차례도 국회 불참이나 갑질 논란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고, 오히려 김 대표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근거 없는 소문이 정말 많다. 말씀하신 부분(갑질 논란)의 상당 부분은 처음 들어본다”며 발뺌하기에 바빴다.

롯데주류(대표 이재혁)도 불리한 일에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 지난 25일 자사 마케팅 직원들이 “우리 알칼리 환원수 소주가 아토피·당뇨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허위 사실을 홍보한 혐의로 약식 기소됐지만, 롯데주류는 아직 “공식 입장이 없다”며 침묵하고 있다. 직원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본사는 방관하는 분위기다.

LG생활건강(대표 차석용) 역시 고가 캐릭터 방향제를 일부러 리필(재충전제) 없이 파는 ‘장삿속’ 때문에 온·오프라인에 걸쳐 소비자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지만, 고객 의견에 귀를 막고 입을 닫은 상태다.

카카오 프렌즈(카카오톡 캐릭터) 방향제를 같은 용량 타업체 제품의 3~4배에 이르는 가격에 팔면서, 출시 후 지금까지 거의 1년이 되도록 리필(재충전제)을 전혀 내놓지 않는데 대해 LG생활건강은 공식 사과나 해명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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