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고의 대출사기’에 금융사 속수무책

기업들 ‘고의 대출사기’에 금융사 속수무책

입력 2014-02-06 00:00
수정 2014-02-0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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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자회사 직원과 협력업체가 저지른 대출 사기는 과거 금융회사들이 자주 당했던 융통어음 할인 사기와 유사하다.

허위 매출을 일으켜 만든 어음을 진성어음(실제 상거래가 수반된 어음)처럼 꾸며 제시하고, 어음을 할인받아 현금으로 챙겨 잠적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어음결제 사고가 빈번하고 구매기업이 ‘배 째라’ 식으로 납품기업에 돈을 주지 않는 사례가 생기자 이를 대체해 외상매출채권이 도입됐다.

구조는 비슷하다. 외상매출채권의 근거가 되는 세금계산서를 허위로 만들고, 이를 은행과 저축은행에 제시해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외담대)을 받아 가로챈 것이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T의 자회사인 KT ENS는 중소기업 N사 등으로부터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를 납품받았다.

이들 납품업체는 돈 대신 KT ENS에서 세금계산서를 받는다. 이는 외담대의 근거 서류다.

세금계산서를 제시받은 은행과 저축은행은 아무런 의심 없이 대출금을 내어준다. 돈이 들어간 곳은 납품업체의 유동성을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이다.

납품업체는 SPC를 통해 납품대금을 받아가고, 나중에 KT ENS가 대출금을 갚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담당자들의 범행이 저질러진 것으로 금감원은 보고 있다.

즉,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KT ENS 직원 김모 씨가 납품업체와 짜고 허위 매출을 일으켜 대출금을 받아 가로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가로챈 금액은 최대 2천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금감원은 추산했다. 하나은행이 1천600억원으로 가장 많고,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을 합쳐 2천억원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1천600억원이 모두 피해금은 아닐 것으로 본다”며 “담보물인 휴대전화가 없는 대출금은 이 가운에 일부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출 서류에는 증권회사 등이 신용보강을 한 것으로 돼 있어 이들로부터 변제받을 수 있다는 게 하나은행의 설명이다.

금융회사는 이처럼 납품업체와 구매업체가 짜고 달려들면 막을 방도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시중은행 기업영업지점장은 “외담대를 취급할 때 일일이 나가서 물건이 실제로 들어왔는지 확인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기업영업지점장도 “납품 물건이 삼성전자 휴대전화, 지급인이 KT 자회사라면 누구라도 믿고 대출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출서류인 채권양도 확인서에는 KT ENS의 인감이 찍혀있다고 박세춘 금감원 부원장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밝혔다.

특히 수년간 정상적으로 대출 원리금을 갚으면서 지속해 온 거래인 만큼 이 과정에서 조금씩 돈을 빼간 만큼 알아채기 어렵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도둑 한 명을 열 사람이 못 막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KT의 신뢰성 때문에 은행에서도 구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다만 “이를 외담대의 시스템적인 문제로 보긴 어렵다”며 “아무리 제도를 강화해도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하면 사건이 터져야 발각된다”고 덧붙였다.

※용어설명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외담대) = 중소기업이 물품납입 대금을 효율적으로 회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어음대체 결제제도로, 2001년 한국은행이 도입했다.

물품 구매기업(통상 대기업)이 판매기업에 대금을 어음으로 주는 대신 채권으로 지급한다.

판매기업(중소기업)은 이 채권을 담보로 거래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조기에 현금을 회수할 수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구매기업이 대출금을 은행에 상환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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