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조사로 드러난 부당이익만 181억 금감원 “형사처벌 필요해 수사의뢰”…다른 은행도 파장 촉각
중소기업을 상대로 부당하게 폭리를 챙긴 외환은행이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됐다.행정 제재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금융감독원이 외환은행을 형사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검찰의 수사 착수만으로 외환은행이 공공적 성격이 큰 시중은행으로서 갖춰야 할 도덕성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했다. 나아가 윤용로 외환은행장까지 수사 선상에 오르면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19일 금감원에 따르면 외환은행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본점 차원의 지시로 전국 290여개 영업 지점에서 조직적으로 가산금리를 불법 인상하는 수법으로 이익을 냈다.
은행 대출금리는 자금조달 비용으로 계산한 기본금리에 대출자의 신용도, 담보 여부 등을 고려한 가산금리를 붙여 책정된다.
외환은행은 대출금리를 정하면서 가산금리를 변경할 때 지켜야 하는 요건과 절차를 깡그리 무시한 채 6천308건의 대출금리를 제멋대로 올렸다.
이렇게 해서 외환은행이 챙긴 부당이득은 181억원이다. 외환은행은 이런 부당 수익을 포함한 막대한 금액을 배당 형태로 대주주였던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넘겼다.
외환은행이 2007년 2월부터 2011년 7월까지 8차례에 걸쳐 론스타에 현금으로 배당한 액수는 자그마치 1조7천99억원에 이른다.
론스타가 우리나라에서 챙기고 떠난 이 돈의 일부는 3천여 중소기업이 영문도 모른 채 외환은행에 비싸게 낸 대출 이자인 셈이다.
외환은행은 리처드 웨커와 래리 클레인 등 전직 행장 시절 ‘총여신이익률 개선 특별업무’, ‘저수익여신 수익성 개선대책’ 등의 명목으로 지점별 목표수익률을 설정하고 목표에 못 미치는 지점은 대출 가산금리를 올려 돈을 더 뜯어내도록 종용했다.
외환은행의 대출채권 이자수익은 2006년 3조1천억원, 2007년 3조6천억원, 2008년 4조5천억원이다. 사상 최대의 이자수익을 낸 2008년에 외환은행은 1월, 8월, 10월 등 3차례에 걸쳐 목표치를 올렸다.
이 같은 일은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해 윤 행장이 취임한 뒤인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이 일로 외환은행은 금융감독원에서 기관경고를 받았다. 웨커 전 행장은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 상당’(퇴직자에 대한 징계) 조치를, 클레인 전 행장은 ‘주의 상당’ 조치를 받았다.
금감원 검사에서 윤 행장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웨커 전 행장 시절 내려간 방침을 지점들이 따랐을 뿐, 자신은 이를 지시하거나 묵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제 수사권이 없는 금감원은 윤 행장이 개입한 혐의를 찾지 못해 징계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이번 압수수색을 계기로 윤 행장도 조사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윤 행장 재직 기간인 지난해 9월까지 금리가 불법으로 인상된 것과 관련해 “만기가 이때(지난해 9월)까지라는 취지인지, 새로 (불법 금리 인상이) 된 건지는 확인해봐야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중은행이 영업의 핵심인 금리 문제로 대대적인 수사를 받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외환은행 수사가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
검찰은 이미 다른 1~2개 은행에서도 외환은행과 비슷한 대출금리 불법 인상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의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 담합’ 조사에 이어 은행들이 대출금리 문제로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금융시장 사정을 잘 몰라 어설프게 CD 금리를 조사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은행권 대출금리가 도마에 오른 것만은 사실이다.
감사원은 은행들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당기순이익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순이자마진(NIM) 축소를 메웠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감원이 지난해 은행권의 가산금리 책정 실태를 표본 조사한 결과 상당수 은행 지점에서 지점장들이 권한을 남용해 가산금리를 멋대로 올리는 수법으로 실적을 거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권혁세 전 금감원장은 “(가산금리 구성요소에서) 정책이윤, 목표이익 비중이 너무 크다”며 “자기네들(은행들) 손쉬운 방식대로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질타했다.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외환은행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하나금융과의 주식 맞교환 문제로 내분을 겪는 상황에서 ‘대형 악재’를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전산상 대출약정서와 승인 금리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며 “부당하게 받은 대출이자 181억원의 환급 조치도 거의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환은행의 ‘사후 약방문’은 때늦은 느낌이 있을 뿐 아니라 진정성도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있다.
외환은행 홍보부는 이날 검찰이 정식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방문했음에도 언론에는 “압수수색이 아니다”고 해명했다가 뒤늦게 번복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