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률 감소ㆍ고령화로 장기 저성장 닮아가선 안 돼”
지난 10년간 한국의 경제규모가 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일본이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져 주춤하는 사이 우리 경제가 약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도 저축률이 감소하고 성장률이 바닥을 기면서 일본의 ‘L자형 불황’을 닮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韓日 세계 GDP에서 비중 격차 절반으로 ‘뚝’
25일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잠정치)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로 일본(5.58%)보다 3.62%포인트 낮다.
이는 1980년의 8.04%포인트(한국 0.78%, 일본 8.82%)에서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한국의 비중은 1984년 1.01%로 처음 1%를 넘어 1997년에는 1.8%까지 올라섰다. 외환위기를 겪은 해 1.65%로 떨어졌지만 다시 상승해 지난해 1.97%로 정점을 찍었다.
한국 경제규모의 정점이 2011년이었다면 일본의 황금기는 20년 전이었다.
1985년대 일본의 비중은 8.43%로 ‘아시아 네 마리 용(龍)’인 한국(1.04%)ㆍ타이완(0.67%)ㆍ홍콩(0.34%)ㆍ싱가포르(0.18%)를 모두 합친 것보다 3배 이상 높았다.
그러나 일본의 비중은 1991년 8.68%까지 치솟고선 추락의 수렁으로 빠졌다.
무역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이 1985년 ‘플라자 협약’을 체결해 엔화가치를 두 배로 높여 일본의 수출을 억제한데다, 1980년대 말부터 부동산 시장에서 거품이 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경제규모는 1997년 6%대, 2000년 5%대, 2005년 4%대로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3%대로 주저앉았다. 2017년이면 2.88%로 내려가 우리나라(1.93%)와의 격차가 1%포인트도 채 안 될 전망이다.
지난 9월에는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종전 ‘A+’에서 ‘AA-’로 한 단계 올려 일본(A+)을 앞지르기도 했다.
이에 앞서 일본은 공공부채 비율이 높은데다 늘고 있다는 이유로 피치로부터 신용등급을 두 단계나 강등당했다. 게다가 피치는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유지해 추가로 내릴 가능성을 열어놨다.
지난해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구매력평가(PPP) 기준 한국 근로자의 평균연봉(3만5406달러ㆍ약 4천만원)이 일본(3만5143달러ㆍ3천971만원)을 처음으로 앞지르기도 했다.
◇저축률 감소ㆍ고령화…日 장기 저성장 닮아가나
일각에선 한국이 일본의 장기 저성장 추세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저축부진, 인구 고령화 등 과거 일본의 침몰 징조가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OECD가 추계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은 1975년 7.5%에서 1988년 25.9%로 꾸준히 상승하며 경제 발전의 젖줄이 됐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바람이 불며 2000년 처음으로 한자릿수로 떨어졌고, 카드 대란이 시작된 2002년에는 0.4%까지 떨어졌다. 그 후 오르내림을 거듭하며 하락세가 계속돼 2012년 현재 2.8%까지 고꾸라진 상태다.
일본의 가계저축률도 1975년 21.3%에서 2005년 1.4%로 30년간 빠르게 떨어졌다. ‘잃어버린 10년’ 이후 초저금리 추세, 부동산 거품 붕괴로 가계자산이 급감하며 가계의 저축 여력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이보다 조금 오른 1.9%이지만 2014년이면 1.4% 수준으로 다시 하락할 전망이다.
저축률이 떨어지면 투자와 소비가 쪼그라든다. 이는 내수위축, 성장세 둔화는 물론 한 나라의 잠재성장력까지 갉아먹을 수 있다.
고령화도 양국이 함께 고심하는 문제다.
일본의 노령인구 부양비율은 2009년 35.6%로 30년간 22.1%포인트 상승했다. 65세 이상 인구를 15세 이하 인구로 나눈 ‘고령화지수’는 170.5%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2008년 10.3%(501만6천명)에서 2017년에는 14.0%(711만9천명)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세계 GDP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2~2014년 1.96%에서 2017년에는 1.93%로 꺾이게 된다.
올해 1~3분기 0%대의 ‘제로 성장’, 부동산 침체, 높은 정부부채, 고령층 사회보장지출 확대 등도 한국의 일본화가 우려되는 부분으로 꼽힌다. 게다가 한국은 1천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라는 폭탄까지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를 기점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LG경제연구원 고가영 연구원은 “일본보다 더 빠른 고령화 추세 때문에 성장률, 소비가 둔화하고 나중에는 국가 재정문제도 심각해질 수 있다”며 “대선에서 나타났듯 갈수록 고령층 인구의 발언권이 세지고 고령자 중심의 복지 수요가 늘겠지만 이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일본의 수순을 밟지 않으려면 일자리 창출과 함께 가계 소득 증대가 필요하다”며 “임금근로자ㆍ자영업자의 소득을 부채증가세보다 빠르게 늘려 저축 여력을 키워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