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계열사들 주총일 담합의혹…당국 속수무책

재벌 계열사들 주총일 담합의혹…당국 속수무책

입력 2012-02-23 00:00
수정 2012-02-23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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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23일 주총…‘소액주주 피하기’ 가능성

상당수 재벌 계열사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주주총회를 열 계획이어서 주총일을 담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세계 일류라고 자부하는 기업들이 주총일을 담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23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까지 주총일을 공시한 12월 결산 상장사 178개사 중 65개사(36.5%)가 다음 달 16일 오전에 주총을 연다. 57개사(32.0%)는 23일에 주총을 개최한다.

주총일을 공시한 삼성그룹 상장 계열은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삼성카드, 제일기획 등 7개사다. 이들 삼성 계열은 모두 다음 달 16일 주총을 연다고 밝혔다.

개최 시간도 모두 오전 9시로 잡아 두 곳 이상의 삼성그룹 계열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은 주총에 참여하려면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차와 현대글로비스, 현대비앤지스틸도 3월 16일 오전 9시에 주총을 개최한다고 공시했다. 기아차와 현대모비스 등 다른 주요 계열은 아직 공시를 하지 않았으나 예전의 몰아치기 관행을 고려할 때 같은 날 주총을 열 가능성이 크다.

신세계그룹도 모두 같은 날 주총을 갖는다. 신세계와 이마트, 신세계I&C, 신세계건설, 신세계푸드,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6개사는 다음달 2일에 주총을 열기로 했다.

LG그룹은 다른 재벌과 달리 계열사 별로 주총일을 분산해 눈길을 끌고 있다.

LG디스플레이와 LG상사는 다음달 9일에 주총을 연다. LG생명과학과 LG유플러스, LG화학은 같은 달 16일에, LG패션은 가장 늦은 23일에 개최한다.

기업들이 특정일을 선택해 동시에 주총을 여는 것은 소액주주의 참여를 제한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환위기 전후로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대리한 시민단체의 주총 참여가 활발해지자 이를 피하기 위해 몰아치기 주총이 관행화됐다는 것이다.

1998년 삼성전자 주총에서는 부당 내부거래와 삼성자동차 출자문제 등에 대해 경제개혁연대(옛 참여연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마찰을 빚어 무려 13시간 넘게 이어지는 ‘마라톤 주총’이 빚어졌다. 또 1999년과 2001년에는 시민단체와 삼성전자 직원들 간에 몸싸움까지 벌어지면서 8시간 이상 지연되기도 했다.

경제개혁연구소 이지수 변호사는 “한 날에 몰아서 주총을 하면 중요한 안건을 고민없이 통과시키는 등 주주권리에 장애가 생긴다. 그룹 계열들이 주총을 분산 개최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전혀 개선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액주주들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펀드매니저는 투자한 기업의 주총 안건은 물론 기업가치에 영향을 줄만 한 내용이 있는지 미리 살펴보고 의결권 행사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몰아치기 주총을 하면 이런 판단을 할 여력이 없어진다. 주주들의 정당한 주주행사권을 기업들이 사전에 막아버리는 꼴이다”라고 주장했다.

당국은 재벌들의 몰아치기 주총이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공감하면서도 마땅한 대책은 없다고 인정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매번 고민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법규정 등으로 분산 개최를 강제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12월 결산법인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3월 특정일에 주총일이 몰리는 것은 불가피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주주 참여를 위해 주총일을 분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회원사들과 논의하는 자리를 갖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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