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서 무덤까지’ 원하는것 다 한다
우량고객(VIP)을 넘어 초우량고객(VVIP)을 유치하기 위한 증권사의 자산관리 서비스 경쟁이 뜨겁다.상위 0.1%의 ‘슈퍼부자’에게 금융자산 서비스는 물론 세무상담, 여행, 자녀결혼 등의 라이프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집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수수료에 의존하는 수익구조에서 탈피하려는 자구책이지만 일반 투자자와의 서비스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특히 리서치센터장이나 애널리스트를 동원한 1대1 상담, 프라잇뱅커의 세무상담 등은 탈법의 소지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고 있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수십억원 내지 수백억원의 현금자산을 보유한 ‘슈퍼리치(Super Rich)’를 잡으려고 각종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VVIP 점포인 SNI(삼성앤드인베스트먼트) 센터를 7곳 두고 있다. 이곳에는 시니어 PB(프라이빗뱅커) 66명이 근무 중이다. 관리하는 고객 자산이 8조원을 넘었다. 예탁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고객만 321명에 달한다.
미래에셋증권은 그랜드인터컨티넨탈, 강남파이낸스, 센터원 등 3곳의 VIP센터에서 20일부터 기존의 자산관리서비스에 기업경영 컨설팅 서비스를 결합한 ‘오피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강남 파이낸스센터에 ‘V 프리빌리지(Privilegeㆍ특권)’ 센터를 연 데 이어 올해 상반기 부산에 VVIP 2호점을 낼 계획이다.
대우증권은 VVIP 자산관리 전문 점포인 ‘PB클래스’를 서울에 3곳 운영 중인데 지난달 초에는 강북 자산가들을 위한 점포를 파이낸스센터에 열었다. 하나대투증권은 하나은행과 공동으로 강남WM센터, 대치센터, 강북WM센터 등 3곳에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VIP 전담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VVIP 서비스는 주식, 채권, 펀드 등의 금융자산 서비스 뿐 아니라 부동산, 상속, 가업승계, 기업경영컨설팅, 절세 상담 등 각종 서비스를 망라한다.
최근에는 문화공연, 골프 라운딩, 자녀교육, 결혼 상담까지 해주는 라이프 서비스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며 한 집안의 집사 역할을 맡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삼성증권은 예탁 금융자산 30억 이상 고객과 잠재 고객에게 최소 가입액이 10억원인 전용 랩 상품 ‘SAA(Separately Advised Account)’를 제공한다. 주식, 채권, 펀드 등 전통적인 금융상품 외에 헤지펀드, 구조화 상품 등 다양한 대안상품을 편입한 것으로 고객 투자성향에 따라 1대1 맞춤 운영한다.
신한금융투자는 주식자산 10억원 이상, 전체 자산 50억 이상 고객에게 애널리스트(투자분석가) 및 각계 전문가와 개별 상담을 통해 주식, 금융상품, 채권, 부동산, 세무 등 고객이 원하는 분야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대증권은 VIP 전담지점은 없지만 주식, 부동산, 절세 상담 등 종합컨설팅을 하고 있고 미래에셋증권은 최고경영자(CEO) 고객에게 기업경영컨설팅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하나대투증권은 회사와 연계된 세무법인을 통해 세무조사 및 조세 불복 대행 서비스 등 종합 세무서비스를 제공하며, 우리투자증권은 예술작품 분석과 매매, 보험, 보관, 절세 컨설팅을 해준다.
대우증권은 예탁자산 10억원 이상 고액자산가들에게 프로 골프선수와의 라운딩을 주선해 준다. 한국투자증권은 초고액자산가는 대표이사가 나서 함께 골프를 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고액자산가를 위한 서비스가 생활 전반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이벤트성 문화공연, 부동산컨설팅, 결혼 등의 서비스를 요람에서 무덤까지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산가들이 VVIP 지점에서 직접 세무사나 애널리스트와 1대1로 만나 상담을 받는 것은 인기가 높다. 애널리스트들의 총 책임자인 리서치센터장이 개인 상담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절세’ 상담이 ‘탈세’ 상담으로 바뀌고 특정종목 정보 등이 은밀하게 사전에 유출될 가능성이 있어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고객 중에 내심 탈세를 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회사 방침상 탈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게 돼 있다. 탈세를 바라더라도 실질적으로 세금을 내면서 더 효과적으로 절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언한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은 특정종목에 대한 조사분석 자료를 일반에 공표하기 전에 특정인에게 미리 제공하면 안 되지만 슈퍼리치의 은밀한 질문에 이런 원칙이 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자료가 공표되기 전에 특정인에게 미리 알려주거나 특정 종목에 대한 내부자 정보를 전달한다면 문제가 되지만 개별 종목도 이미 알려진 정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PB의 일대일 자문과 일반 투자자의 서비스가 질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소액 투자자로부터 받은 수수료가 고스란히 슈퍼리치를 위한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연맹 조남희 사무총장은 “금융회사가 대대적으로 마케팅에 나서면서 비용 부담은 커지고 있는데 결국 그 부담은 일반 고객이 충당하고 있다. 고객 간 서비스의 차이를 두는 수준이 아니라 일방적인 차별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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