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011년 공정위 의결서 분석
기업들이 서로 짜고 가격과 물량 등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담합(Cartel)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매우 엄격하게 제재하는 부당 행위 중 하나다. 많게는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담합 사실을 스스로 신고하는 기업도 있다. ‘담합 자진신고자 감면제’(리니언시·leniency)에 따라 과징금을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담합을 주도했음에도 리니언시를 ‘활용’해 과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영리한 기업’이 늘고 있다.공정위는 대기업이 리니언시를 악용하고 있는 현실에 고심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개정 고시를 통해 리니언시 혜택을 입은 지 5년 안에 새로운 담합 행위를 저지르면 자진신고를 하더라도 감면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담합 주도 기업이 리니언시로 빠져나가거나 담합에 참가한 기업이 소수일 경우 업체 모두가 감면 혜택을 보는 등의 문제도 여전하다.
리니언시를 가장 ‘쏠쏠하게’ 이용한 그룹은 LG그룹이었다. LG그룹 계열사가 지난 5년간 1순위로 담합을 신고해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은 경우는 8차례로 865억 5000만원을 감면받았다. 2순위나 3순위로 신고해 과징금을 일부 면제받은 경우도 4차례 있었다. 일부 감면 금액까지 합치면 총 1054억원의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LG전자는 2010년 삼성전자 및 캐리어와 함께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시스템에어컨과 TV 조달 단가를 담합해 35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전액 면제받았다.
롯데그룹도 리니언시를 잘 활용한 편이었다. 4차례에 걸쳐 640억원의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았다.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은 2007~2008년 비닐의 원료가 되는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과 폴리프로필렌을 담합해 3차례에 걸쳐 62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모두 면제받았다. 10대 그룹 계열사 중 LG와 롯데를 제외하고는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은 기업은 없었다.
삼성그룹은 리니언시 2순위 지위를 인정받아 과징금 50%를 면제받은 경우가 무려 9차례에 달했다. 담합 행위를 먼저 신고하지는 않지만 다른 기업의 신고 움직임이 포착되면 얼른 뒤따라 나선 경우가 많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삼성의 ‘정보력’이 그만큼 기민하고 뛰어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담합을 주도한 대기업이 리니언시를 통해 빠져나가는 제도에 대해서는 1분기 중 보완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2012-01-25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