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전력산업 민영화 문제있다

[열린세상] 전력산업 민영화 문제있다

이성형 기자 기자
입력 2003-10-08 00:00
수정 2003-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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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8일 일요일 밤 이탈리아 전역이 사전예고도 없이 정전 상태에 들어갔다.달리던 전철이 멈췄다.백화점,박물관,명승지는 문을 닫지 못한 채 새벽을 맞이했다.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은 무료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110대가량의 열차도 선로에서 멈췄다.현금인출기가 무용지물이 됐고,다음 날짜 신문도 배달되지 않았다.사고는 이탈리아가 프랑스에서 구매한 전력이 스위스 송전망을 거쳐 이탈리아로 넘어오면서 생겼다고 한다.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스위스 측에,프랑스와 스위스는 이탈리아 송전망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정전사태가 국제적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21세기에 들어와 대형 정전사고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잦아지고 있다.연전에 캘리포니아주가 전력난으로 난리법석을 떨었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지난 8월에는 미국 동북부와 캐나다에서 송전망 사고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우리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남미의 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에서도 1990년대 말과 2001년에 돌아가면서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은 바 있다.그동안 진행된 전력산업의 구조개편과 민영화에 무언가 심각한 문제점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이 일어난 이후 일어난,‘지울 수 없는’ 사실들을 나열해 보자.첫째,대형화된 정전 사태나 제한 송전 사태가 잦아졌다.대부분의 사고는 민간기업이 추가 투자를 하지 않고,기존의 설비를 풀 가동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극히 합리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망(網)산업의 특성상 발전·송전·배전 사업의 분할은 이득보다 실이 많다.발전소·송전소·배전소 사이의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고,그런 까닭에 전기의 질도 나빠졌다.사고가 났을 때 복구사업도 지루한 책임공방으로 지연되는 특성도 있다.

둘째,민영화 기업들은 추가 투자를 기피한다.전력설비의 증설과 교체는 엄청난 투자비와 몇 년이 걸리는 중장기적 과업이다.단기적 이윤동기와 실적을 염두에 두는 경영자들은 이를 등한시한다.이들은 차라리 공급시장에서 업자들끼리 담합해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안정적인 전력공급이란 공공재적 성격은 이들의 관심 밖이다.최근 미국과 캐나다의 정전 사태 이후 미국 대기업들은 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크게 우려해 스스로 운영하는 전력설비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한다.이 정도라면 민영화 체제는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전력산업의 민영화는 전력가격의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많은 논자들이 말했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례를 보면 전력가격은 올랐다.전력가격을 올리는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담합으로 공급량을 통제하는 것이다.캘리포니아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일시적으로 하락을 보인 예외적인 영국의 사례도 보면 그 원인은 대체로 에너지 가격의 하락에 기인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전력 가격(매출액 기준)은 연료비 70%,설비 감가상각비 20%,수선점검비 4∼5%,인건비 3∼4%로 구성된다.민영화를 해서 줄일 수 있는 것은 수선점검비와 인건비 일부다.민간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전략은 수선점검의 횟수를 줄이고 근로자들의 수를 줄이는 방법이지만,이 방법은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바로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훼손한다.기업의 단기적 이윤과 안정성사이의 시소게임에 국민들은 포로가 된다.

세계은행의 여러 보고서도 최근에 전력산업의 민영화와 규제완화가 가져온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재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환란 당시 정부 채무를 줄이고,외국 투자자들에게 투자유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시작된 전력 민영화 사업이 발전소의 분사(分社)를 넘어서 배전분할 단계로 넘어왔다.민영화로 가계나 기업 등 소비자들이 잉여를 맛볼 수 있는지,과연 안정적인 양질의 전력 공급이 유지될 수 있는지 정부는 외국사례와 우리의 특성을 잘 검토해 결정할 일이다.

이 성 형 세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2003-10-0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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