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간] 풍수의 불확실성

[녹색공간] 풍수의 불확실성

최창조 기자 기자
입력 2003-09-01 00:00
수정 2003-09-01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풍수를 연극에 비유하자면 땅은 무대가 되고 사람은 배우와 연출자가 된다.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와 연출자이지 무대 그 자체는 아니다.매우 외람된 표현이지만 풍수는 천문학을 닮았다.우리는 별을 관찰하지만 과학적 유추 해석과 가설만이 가능할 뿐이다.직접 별을 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그러므로 우리는 별과 성간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우주의 진리에 접근했다고 확신할 근거가 아직은 없다.풍수로 말하자면 그것은 땅기운(地氣)과 흡사하다.요즘 기(氣)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지만 아마도 그 실체와 메커니즘을 상식인에게까지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점은 분명하다.풍수를 연극에 비유하여 무대를 배우보다 하위의 개념으로 보는 것은 일의 책임을 자신에게서,혹은 사람에게서 찾아내려 하지 않고 땅이라든가 어떤 운명적 요소에서 찾고자 하는 바를 경계하고자 함이다.만약 마당극이라든가 탈춤 같은 것이라면 그 무대가 마당이 알맞을 것이고 셰익스피어나 오페라라면 서양식 무대에 올려야 제 맛이 날 것이다.따라서 장대한오페라를 초라한 무대에 올리는 것이나 탈춤을 진흙 구덩이에서 벌이는 것은 잘 된 일이 아니다.

이것이 땅과 인간 사이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해지는 까닭이다.보다 중요한 것은 인위적인 냄새가 짙게 풍기는 균형보다는 서로 잘 어울리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조화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천문학을 끄집어낸 이유를 생각해보자.자칫 잘못하면 천문학은 점성술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하지만 현대 과학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를 한다.불행히도 풍수는 그렇지가 못하다.우리 조상들의 땅에 관한 지혜가 될 수도 있고 연구가 잘 진척되면 환경 전반에 관한 중요한 철학적 기반이 될 수도 있다.우리는 별자리에 이름을 짓고 너의 별,나의 별,고향의 별 하는 식으로 상징성을 부여하며 위로를 받는다.이런 태도는 과학은 아니더라도 인간의 체취를 풍기기 때문에 아무리 엄격한 과학자라 하더라도 이것까지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합리적인 회의주의는 냉소주의와는 다르다고 한다.회의는 행동이라도 부르지만,냉소는 포기와 수동적 태도를 조장하기 때문이다.나는 지난달에 스스로를 회의에 빠진 책상물림이라 자처한 적이 있다.지금 사회는 분명 모든 분야에서 회의와 혼돈이 판을 친다.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회의가 아니다.회의는 고민을 부르고 고민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다.물론 해결책이 없을 수도 있다.그 때는 선택의 문제가 될지라도 그 또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에 대하여 회의는 할 수 있지만 냉소를 보낼 수만은 없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내 주위에 유독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모이면 문제를 제기하지만 결론은 거의 냉소로 맺는다.누구도 확실하게 나서서 이렇다 하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본래 냉소는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에서 비롯된다.그것이 권장할 사항이 아니란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인간이 별한테조차 인간적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라면 땅에도 그런 의미 부여는 충분히 가능하다.너를 만났던 장소,너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장소,다른 이에게 상처를 받고 막걸리를 기울이던 허름한 대폿집이 있던 골목,어느 새벽 느닷없이 떠났다가 만난 호젓한 근교의 숲길,이런 곳들에서 우리는 확실치는 않지만 명당의 푸근함을 느끼지 않는가.

최 창 조 전 서울대 교수 풍수연구가
2003-09-01 15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남북 2국가론’ 당신의 생각은?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최근 ‘남북통일을 유보하고 2개 국가를 수용하자’는 내용의 ‘남북 2국가론’을 제안해 정치권과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반헌법적 발상이다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잘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