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매일신보 창간정신 오늘에 되새기며…/ 어제 배설선생 94주기 추도식

대한매일신보 창간정신 오늘에 되새기며…/ 어제 배설선생 94주기 추도식

입력 2003-06-25 00:00
수정 2003-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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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무심하게도 왜 그를 이다지도 급히 데려갔단 말인가!”

구한말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배설(裵設·영국명 베델)선생이 일제의 탄압으로 건강이 악화돼 3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것을 안타까워한 고종 황제의 조문(弔文)이다.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배설선생 서거 94주년 기념대회’가 24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묘지공원에서 열렸다.배설선생기념사업회와 주한 영국대사관이 주최하고 민족정기수호중앙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대회장인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대회사와 찰리 험프리 주한 영국대사의 기념사,선생의 생애와 활동보고 순서로 이어졌다.

박유철 전 독립기념관장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대회에서 이수성 전 국무총리는 “외국인의 몸으로 자기의 전부를 던져 한국을 위해 헌신한 배설선생의 정신에 영원히 감사해야 한다.”며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국가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각자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험프리 대사는 기념사에서 “한·영 우호·통상·항해 조약이 체결된 지 120주년을 맞아 양국의 우호적 협력관계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분들 가운데 한 분인 배설 선생을 추모하게 돼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의 유족을 비롯,200여명이 참가했다.김유전 광복회장,박기정 한국언론재단이사장 등도 참배했다.

1872년 영국 남부도시 브리스톨에서 태어난 배설선생은 고향에서 소년기를 보낸 뒤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완구점과 무역업을 했다.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의 특별통신원에 임명돼 한국으로 건너왔다.일제의 방화로 경운궁이 불탄 뒤 보낸 ‘대한제국 궁중의 폐허화’란 제목의 첫 기사가 친일 성향의 크로니클지와 맞지 않자 사직서를 낸 선생은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등 민족진영의 논객들과 뜻을 모아 같은 해 7월18일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요구를 신랄하게 비판한 창간호 사설을 비롯 ‘을사조약 무효주장’ 등 항일 민족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배설선생은 계속되는 항일 논조로 두차례 재판에 회부되는 등 일제의 위협에 시달렸다.

동방의 조용한 나라의 주권을 위해 싸우다 순국한 벽안의 이방인을 기리는 행사는 수도방위사령부 군악대의 연주 속에 대한독립국가 선양회 합창단이 ‘독립군가’와 ‘용진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진행됐다.대한매일은 내년에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이종수기자 vielee@
2003-06-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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