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부패를 막는 제도와 시스템

[열린세상] 부패를 막는 제도와 시스템

김형진 기자 기자
입력 2003-04-09 00:00
수정 2003-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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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냐에 대한 논의는 무수히 있지만,나는 부패를 제일로 꼽고 싶다.장안 최고의 화두인 개혁도 결국은 잘못된 부분을 도려내고 싶다는 열망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요즘 어느 개그맨이 한 정치인을 풍자하여 행복해지셨느냐,살림살이 나아지셨느냐고 묻는 장면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물질적으로 풍족해진 만큼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는 역설적인 질문이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어지간히 사기를 쳐서 한몫 잡아 봐도 나보다도 더 해먹은 놈이 있는 한 불만은 끊일 수 없고,부와 지위가 그 사람의 노력의 대가라기보다는 뒷거래의 산물로 보이는 한 응어리진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다.판결에 지면 판사가 상대방으로부터 돈을 먹은 것이고,검사가 내쪽만 닥달하면 역시 저편의 약발이 통한 것이다.

이렇게 허구한 날 억울한 사람만 생기는 한,져야 될 사건이 지는 것이 정의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할 수 없다.이런 상태에선 백약이 무효이다.그저 모두가 죽일 놈들뿐이다.어디를 봐도 마찬가지다.이런 상태를 그대로 놔두고는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더라도 결국 도로아미타불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부패라는 현상은 우리 눈에 씌어진 일그러진 투시경이다.이를 벗어버리지 않고는 결코 진실과 화해,관용을 만날 수 없을 뿐더러 업그레이드된 사회도 만들 수 없다.제 아무리 사랑과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도,물질과 풍요가 폭포같이 쏟아져도,새치기하는 놈이 이익을 보는 사회구조에 살고 있는 한,진정한 행복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인간은 원래 그런 것이다.

정상적인 세상이라면 부와 지위,또는 학문 등이 뛰어난 사람들이 존경을 받아야 당연하다.남보다 훌륭한 재능을 가진 것에 대하여,남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한 것에 대하여 합당한 보상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열심히 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인가.이휘소나 차범근 같은 인물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부를 얻어야 마땅하고 또한 그것이 순리이다.그래야 세상 살 맛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는 부와 지위가 존재할 뿐 아니라,그것이 대부분일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세상을 뒤집어 버리고 싶은 욕구만이 횡행할 뿐이다.나부터도 그럴 것이다.그러므로 부패척결이야말로 개혁의 최전선에 놓여야 하고 가장 중심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이것에 성공하지 않고는 개혁의 성공도 없다.그런데 그동안 어느 정권이든지 부패청산을 거론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지만,제대로 이를 다루었다는 정권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신정부도 인사청탁한 자를 패가망신시키겠다면서 부정과 반칙을 뿌리뽑겠다고 공언하고 있다.물론 부패를 다루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우리와 같이 엄포와 처벌을 병행할 수도 있고,뇌물을 받은 자를 광장에서 공개처형하는 중국과 같이 무지막지한 사례도 있다.대체적으로 엄벌주의가 일반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뇌물 관련형벌도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그렇다고 부패가 줄었다는 조짐이 없다.따라서 뇌물은 처벌의 강도가 문제가 아니라,시스템과 제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당연한 말이지만,미국 등 선진국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우리보다 깨끗하고 청렴해서 부패지수가 낮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그것은 제도적으로 부패할 수 없는 구조와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뇌물과 부정행위가 제도적으로,시스템적으로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면,누가 감히 법을 어기겠는가.결국 선진국의 우위는 법과 제도의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므로 개혁을 논하는 자는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먼저 법과 제도의 제정,개정,보완,정비에 신경 쓸 일이다.법과 제도를 제대로 갖추려 하지 않고 구호제창에 그치는 개혁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공산이 크다.그런 정권은 종내에는 또 다른 종류의 부패로 국민의 실망만 가중시키고 물러날지도 모를 일이다.

김 형 진 변호사
2003-04-0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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