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장편소설 ‘보트하우스’ 새단장 재출간

장정일 장편소설 ‘보트하우스’ 새단장 재출간

입력 2000-02-09 00:00
수정 200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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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짓말’의 원작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이 지난해 발표했던 장편소설 ‘보트하우스’를 부분개작, 새로 냈다.

작품의 음란성 여부로 형사범 피의자가 됐던 작가의 작품은 애먼 기피대상이 될 수 있고 실없는 관심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작가는 언뜻 이런 사태를 당연히 여길 뿐 아니라 반기는 것처럼 보인다.새 소설에 자신의 소설가 경력과 함께 소설관을 마침 잘됐다는 듯 자세히 피력하고 있다.

‘노동과 생식이란 두 축에 의해 굴러온 역사라는 가속도에 내 식의 브레이크를 걸어보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은 우습게도 들릴 수 있겠지만 변명조가 아닌 자신감이 담긴 설교조는 상당히 인상적이다.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작가가 괜히 이런 자신의 소설쓰기 습관이나 철학을 들먹이지 않았다는것이다.

‘보트하우스’는 소설쓰기의 한 버릇에서 결정적인 싹을 틔운다.컴퓨터로소설을 쓰던 소설가 주인공은 타자기로 새 소설을 써야만 하겠다는 생각에휘둘리고 특정 제품을 열성으로 구하는 과정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이제 이두 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작가는 말 그대로 ‘삼천포’로 빠진다.여자가 타자기로 변신하는 환상의 세계와,도끼같은 흉기로 머리를 강타당하면 죽기는커녕 더 살 맛을 느끼는 비현실의 세계가 도입된다.이렇게 간단히 말해버리면 진지할필요가 없는 만화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독자를 변신과 초능력의 비현실로 끌어들이는 데 상당한 솜씨를 발휘한다.

첫 여자가 난데없이 타자기로 변신하는 사연과 명작 ‘죄와 벌’의 전당포살인사건을 한국적으로 모방한 또다른 여주인공이 감옥 대신 초능력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야기는 모두 70여쪽(4·6양장판)의 제법 긴 분량이나 독자의관심을 여유있게 리드하고 있다.

반면 이 환상과 비현실의 우물 속으로 풍덩 내던져진 이야기의 두레박을 현실로 다시 끌여올려야 하는 후반부는 별로 그럴듯하게 읽히지 않는다.

타자기로 변신한 여자가 다시 사람으로 되살아나는 과정은 변신하는 앞부분과는 달리 만화같은 냄새가 나고 재변신을 위해 동원된 인물과 장치를 마무리해야하는 맨 뒷부분은 열정없는 대차대조표 꿰맞추기처럼 보인다.그런데작가는 웬 바람이 불어 카프카의 변신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살인사건을 끄집어냈을까.

난해한 소설가의 대명사인 카프카가 직접 인용되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장정일답게’ 성적인 장면이 꼬리를 물고 있고 작가는 성적인 주제에서 한눈판다든가 눈치보는 기색이 전혀 없다.

책을 낸 출판사는 작가의 새 소설이 ‘우리 시대의 성적인 욕망의 뿌리를 추적하고 있다’고 선전한다.어떤 독자는 작가의 비현실 도입을 ‘성적으로 함부로 말하기’의 색다른 방편으로 치부할 것이고 어떤 독자는 성에 관해 보다 튼튼해진 메타포(은유)로 여겨 이것저것을 다시 생각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장정일의 ‘보트하우스’는 그냥 기피할 책도 아니며 성적인호기심만으로 접근할 소설도 아니라는 점이다.도서출판 프레스21 간.

김재영기자 kjykjy@
2000-02-0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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