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은 당대 최고의 문명을 떨쳤던 오라비 허봉이나 동생 허균보다시격(詩格)이 높다는 평을 받은 걸출한 시인이었습니다.뿐만 아니라 혁명적이단아였던 허균 못지 않게 저항과 파격의 삶을 산 선구적 여성이었어요.역사에 매몰된 그를 불러내 새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의 편집위원인 김신명숙씨(39)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불꽃의 자유혼-허난설헌’(금토·전2권)을 내놓았다. 당대의 문장가였던 초당 허엽의 셋째딸로 태어난 허난설헌은 타고난 재예와 용모로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여덟살 때 이미 ‘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세상을 놀라게한 그는 사후에 편집된 시집으로 중국은 물론 일본에도 알려진‘국제적’ 작가였다. “허난설헌이야말로 조선조 최고의 페미니스트이자 ‘저항하는 여성들의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그는 삼종지도와 칠거지악 등 유교적 여성윤리에 치열하게 저항하다 스물일곱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지요.허난설헌은 하루하루 숨통을 죄어오는 효부·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괴로워 하며 스스로를 새장에 갇힌 앵무새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김신씨는 “현모양처와 기생의 전형인 신사임당과 황진이와는 달리 허난설헌은 남성에 의해 틀지워진 여성상에 맞지 않았던 탓에 지금도 마땅히 자리할 곳이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김신씨가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작품화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것은 이문열씨의 소설 ‘선택’이 여성계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던 97년 봄.김신씨는 “그같은 시대착오적인 남성우월주의자들을 그대로 관망할 수 없어 허난설헌을 소설로 살려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인 그는 자신의 성을 아버지의성 ‘김’과 어머니의 성 ‘신’을 합해 ‘김신’으로 쓰고 있다.가부장적가족제도를 타파하려는 ‘페미니스트적’ 의도에서다.金鍾冕 jmkim@
1999-01-07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