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민주화 물결속 규제는 옛말(한국문화 50년:3)

영화/민주화 물결속 규제는 옛말(한국문화 50년:3)

이용원 기자 기자
입력 1998-08-18 00:00
수정 1998-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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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마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쾌거/군사정권땐 엄격… 잇단 상영금지·구속/88년 미 직배영화 등장 우리영화 위기

대한민국 정부 출범 당시 영화계는 민족해방의 흥분에서 꽤 벗어나 있었다.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던 ‘광복영화’의 기세가 주춤해진 대신 민중의 정서를 리얼하게 그린 멜로드라마나 예술성 높은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파시’(최인규 감독,49년작) ‘마음의 고향’(윤용구 감독,〃)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수작들이다.한쪽에서는 분단의 고착화를 반영하듯 반공영화가 붐을 탔다.

‘6·25’가 끝난 뒤 한국영화는 중흥기에 들어선다.55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57년에는 한국이 참가한 첫 국제영화제인 제3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시집가는 날’이 희극상을 받아 성가를 높였다.61년 ‘마부’가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탄 것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쾌거로 꼽힌다.

그러나 5·16 이후 군사정권은 영화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했다.61년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전국적으로 상영 도중 상영금지라는 극형을 당했다.이를 신호로 한듯 62년 1월에는 영화법을 제정,영화사 설립을 등록제로 바꾸었다.64년에는 김대중 등 국회의원 13명이 영화법 폐기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시나리오 사전심의’등 규제책이 계속돼 65년 4월 ‘7인의 여포로’의 이만희 감독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이런 와중에서도 영화산업은 꾸준히 발전,69년에는 연간 관람객 수가 1억7,300만명에 달했다.그러나 이를 고비로 줄어들어 79년부터 연간 관객 수는 4,000만∼5,000만명대에 머물러 있다.

사회가 민주화하면서 영화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어졌다.경찰 비리를 다룬 코미디 ‘투캅스’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끈 데서 보듯 소재 제한도 사라졌다.그러나 지난 88년 할리우드 직배영화가 등장한 뒤 영화계의 고민은 ‘어떻게 관객의 발길을 한국영화 쪽으로 돌리는가’에 모아져 있다.지난달 있었던 ‘스크린쿼터제 폐지’논쟁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李容遠 기자 ywyi@seoul.co.kr>
1998-08-1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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