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투표」 허용… 의원권한 강화해야/당논보다 국익 우선하는 표결풍토 절실/의회 출석여부 등 의정활동 공개 바람직
지난달 23일 미국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공화당과 민주당의 오랜 쟁점이었던 「최저임금인상안」이 상정됐다.시간당 4.25달러인 최저임금기준을 90센트 올리는 이 안은 1백96석의 소수당인 민주당이 발의했다.2백37석의 공화당은 『저임근로자의 실직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반대했다.특히 당 지도부는 『죽으면 죽었지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법안통과를 완강히 가로막았다.표결에 들어갔다.찬성 2백81,반대 1백44로 통과됐다.공화당 의원 93명이 당지도부의 노선(당론)에 맞서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지난해 6월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선거공약인 「연방정부의 균형재정의무」를 헌법에 명시하기 위해 수정헌법안 처리를 시도했다.연방의원 3분의2의 찬성을 요하는 이 수정헌법안은 일부 민주당의원들의 지지로 하원을 통과했다.이어 공화당 54석,민주당 46석으로 구성된 상원으로 넘어갔다.67명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그러나 표결 결과는 찬성 66,반대 44표로 나타나 1표차로 부결됐다.13명의 민주당의원들이 가세했지만 공화당의 마크 해필드 세출예산배정위원장(오리건·5선)이 반대표를 던졌다.대선출마를 앞둔 보브 돌 당시 상원원내총무는 펄펄 뛰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당내에서는 위원장자리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의견도 분분했다.이 수정헌법안 처리실패는 지난해 말 연방정부 파업사태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그러나 해필드는 여전히 건재하다.나아가 그이 때문에 지금도 공화당은 수정헌법안 재제출을 망설이고 있다.미국 의회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의 한 예에 불과하다.
우리 국회를 보자.14대 국회 4년동안 9백2건의 법안이 제출돼 6백56건이 가결됐다.5·16군사정부의 최고회의를 제외하고 헌정사상 가장 왕성한 입법활동이다.이중 정부제출법안은 5백81건으로 5백37건이 가결돼 92%의 높은 통과율을 보였다.가히 「통법부」라 불릴 만 하다.3백21건의 의원발의법안은 고작 37%인 1백19건만이 통과됐다.입법기관인 국회의 돋보이는 통법기능,우리의 현실이다.
1개법안에 대한 14대 국회에서의 평균심의일수는 58일로 표면적으로는 선진국 의회와 별반 차이가 없다.그러나 엄밀히 따져 이는 심의일수가 아니라 단지 계류일수일 뿐이다.그나마 14대 국회 처리법안의 52.9%가 정기국회말인 10∼11월에 제출된 데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법안이 무더기 제출돼 졸속처리되기 일쑤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의원들의 전문성 부족과 당론에 어긋나는 표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정치풍토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95년 3월 야당의원들의 의장공관점거사태 등에서 보듯 우리 선량들은 당론이 곧 소신이고 여기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제멋대로 투표했다가는 다음 공천을 기대할 수 없다.자연히 국회에는 힘만 존재하고 토론은 설 자리가 없다.4분 자유발언제와 긴급현안질의제도등 우리 국회법은 토론활성화를 위한 훌륭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그러나 이런 토론의 장도 의원 자신의 소신을 펴기 보다는 당론을 강변하는 도구로 변질된지 오래다.
이는 결국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과 의식의 문제라는 맥빠진 결론으로 이어진다.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점진적으로나마 국회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몇가지 제도적 개선방안들이 제기되고 있다.서울대 박찬욱교수는 「일하는 국회」,「공부하는 의원」을 만들기 위해 교차투표(Cross Voting)를 허용하는 풍토를 만들 것을 제언한다.『일반안건에서나마 각 정당은 소속의원들이 자유의사로 표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신한국당 서상목의원 같은 이는 기명투표제를 제시한다.찬반표결 때 의원 이름을 표기토록 해 유권자들이 평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이는 곧 국회의원 개개인의 권한을 강화하되 실질적인 책임을 보다 많이 부여,정치의 중심을 정당에서 국회로 옮기는 방안으로 검토할 만 하다.미국의 「Congressinal Quarterly」처럼 국회정보신문을 통해 의원들의 출석여부와 표결상황등 의정활동을 낱낱이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황락주 전 국회의장은 29일 퇴임하면서 『국회의원들이 스스로가 곧 국회라는 생각을 가질 때 의회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당부했다.〈진경호 기자〉
지난달 23일 미국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공화당과 민주당의 오랜 쟁점이었던 「최저임금인상안」이 상정됐다.시간당 4.25달러인 최저임금기준을 90센트 올리는 이 안은 1백96석의 소수당인 민주당이 발의했다.2백37석의 공화당은 『저임근로자의 실직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반대했다.특히 당 지도부는 『죽으면 죽었지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법안통과를 완강히 가로막았다.표결에 들어갔다.찬성 2백81,반대 1백44로 통과됐다.공화당 의원 93명이 당지도부의 노선(당론)에 맞서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지난해 6월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선거공약인 「연방정부의 균형재정의무」를 헌법에 명시하기 위해 수정헌법안 처리를 시도했다.연방의원 3분의2의 찬성을 요하는 이 수정헌법안은 일부 민주당의원들의 지지로 하원을 통과했다.이어 공화당 54석,민주당 46석으로 구성된 상원으로 넘어갔다.67명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그러나 표결 결과는 찬성 66,반대 44표로 나타나 1표차로 부결됐다.13명의 민주당의원들이 가세했지만 공화당의 마크 해필드 세출예산배정위원장(오리건·5선)이 반대표를 던졌다.대선출마를 앞둔 보브 돌 당시 상원원내총무는 펄펄 뛰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당내에서는 위원장자리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의견도 분분했다.이 수정헌법안 처리실패는 지난해 말 연방정부 파업사태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그러나 해필드는 여전히 건재하다.나아가 그이 때문에 지금도 공화당은 수정헌법안 재제출을 망설이고 있다.미국 의회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의 한 예에 불과하다.
우리 국회를 보자.14대 국회 4년동안 9백2건의 법안이 제출돼 6백56건이 가결됐다.5·16군사정부의 최고회의를 제외하고 헌정사상 가장 왕성한 입법활동이다.이중 정부제출법안은 5백81건으로 5백37건이 가결돼 92%의 높은 통과율을 보였다.가히 「통법부」라 불릴 만 하다.3백21건의 의원발의법안은 고작 37%인 1백19건만이 통과됐다.입법기관인 국회의 돋보이는 통법기능,우리의 현실이다.
1개법안에 대한 14대 국회에서의 평균심의일수는 58일로 표면적으로는 선진국 의회와 별반 차이가 없다.그러나 엄밀히 따져 이는 심의일수가 아니라 단지 계류일수일 뿐이다.그나마 14대 국회 처리법안의 52.9%가 정기국회말인 10∼11월에 제출된 데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법안이 무더기 제출돼 졸속처리되기 일쑤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의원들의 전문성 부족과 당론에 어긋나는 표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정치풍토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95년 3월 야당의원들의 의장공관점거사태 등에서 보듯 우리 선량들은 당론이 곧 소신이고 여기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제멋대로 투표했다가는 다음 공천을 기대할 수 없다.자연히 국회에는 힘만 존재하고 토론은 설 자리가 없다.4분 자유발언제와 긴급현안질의제도등 우리 국회법은 토론활성화를 위한 훌륭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그러나 이런 토론의 장도 의원 자신의 소신을 펴기 보다는 당론을 강변하는 도구로 변질된지 오래다.
이는 결국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과 의식의 문제라는 맥빠진 결론으로 이어진다.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점진적으로나마 국회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몇가지 제도적 개선방안들이 제기되고 있다.서울대 박찬욱교수는 「일하는 국회」,「공부하는 의원」을 만들기 위해 교차투표(Cross Voting)를 허용하는 풍토를 만들 것을 제언한다.『일반안건에서나마 각 정당은 소속의원들이 자유의사로 표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신한국당 서상목의원 같은 이는 기명투표제를 제시한다.찬반표결 때 의원 이름을 표기토록 해 유권자들이 평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이는 곧 국회의원 개개인의 권한을 강화하되 실질적인 책임을 보다 많이 부여,정치의 중심을 정당에서 국회로 옮기는 방안으로 검토할 만 하다.미국의 「Congressinal Quarterly」처럼 국회정보신문을 통해 의원들의 출석여부와 표결상황등 의정활동을 낱낱이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황락주 전 국회의장은 29일 퇴임하면서 『국회의원들이 스스로가 곧 국회라는 생각을 가질 때 의회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당부했다.〈진경호 기자〉
1996-06-0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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