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 쌍계사 목장승(한국인의 얼굴:57)

경남 하동 쌍계사 목장승(한국인의 얼굴:57)

황규호 기자 기자
입력 1995-12-22 00:00
수정 1995-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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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코·송곳니의 “사찰 수호신”/눈썹·콧수염은 문양처리… 우스꽝스러/흐트러진 머리칼은 사방으로 뻗친듯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어귀에 서 있었던 목장승 한 쌍.지금은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 와 있는 쌍계사 목장승을 보노라면 지혜로운 솜씨가 엿보인다.그것은 나무를 뿌리째 뽑아다 물구나무 세워 장승으로 다듬은 기발한 착상이다.도끼 목수의 솜씨는 아닌 듯 하다.절집과 인연이 닿은 어떤 도목수가 소박한 영감을 불어넣어 만든 신앙대상물일 것이다.

쌍계사 목장승은 나무 뿌리가 하늘을 향한 특이한 모습을 했다.아름드리 밤나무를 아예 뿌리가 달리게 뽑아다 뿌리를 머리삼아 장승 한 쌍을 깎고 다듬어 냈다.그래서 장승의 머리는 봉두난발한 꼴이 되었다.머리칼이 가닥 가닥 헝크러졌다기 보다는 한데 뭉쳐 사방 팔방으로 흩어졌다.이 때문에 귀신을 형상화 할 때 흔히 그려넣는 뿔처럼 보이기도 한다.머리칼이 아닌 뿔로 여겨도 사실상 무리가 없다.

그 이유는 사람을 닮은 인태신으로 제작 되었다는 점에 있다.쌍계사 목장승은 인태신으로 조각한 신장상인 것이다.높이는 자그마치 3백30㎝나 되어 그야말로 키가 장승이다.왕방울눈과 주먹코에 송곳니를 드러낸 이들 장승은 신장상이 분명하지만,그리 무서운 귀신이 아니어서 공포분위기를 자아내지는 못했다.오히려 전통무늬로 도안화한 눈썹과 수염 등 얼굴 다른 부분들이 우스꽝스럽다.

눈알이 왕방울처럼 둥글게 튀어나온 것은 암수 장승이 서로 닮았다.콧방울은 말 그대로 방울인데,암장승은 콧마루를 사이에 두고 두 개가 붙어있다.수장승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었고 왕방울 눈위에 당초문으로 눈썹을 새겼다.눈썹이 왜 당초문이가 했더니,웬걸 콧수염은 구름무늬(운형문)다.인중이 길어 바보스러울까봐 구름무늬를 새긴 모양이지만 본래 인상은 끝내 바꾸지 못했다.수염은 댕기머리 가꾸듯 총총 따 내렸다.

무섭기로 말하면 암장승이 더 하다.아랫니를 내놓은 입가에 송곳니를 위로 솟게 올려붙여 윗송곳니가 팔자로 아래를 향한 수장승과 대조를 이루었다.눈썹도 닭벼슬처럼 새겨올렸다.또 할망구 노파의 성난 얼굴을 표현할 요량으로 턱에다 톱니꼴 주름살을 길게 새겼다.그렇지만 험상궂은 얼굴이라고 가슴을 철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엉뚱하기 짝이 없는 익살스러운 얼굴로 다가 설 뿐이다.

이들 쌍계사 장승은 사실상 착한 신장으로 자리매김 되어있다.수장승은 가람선신이고 암장승은 외호선신이다.그러니까 쌍계사 장승은 절 안팎을 지키는 사찰장승기능을 지닌 것이다.또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 주변 사방산천가운데 헛점이 보이는 부분은 채운다는 이른바 비보기능도 공유했다.

사찰장승은 때로 절땅 경계표시물이 되어 바깥 세상과 절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을 그었다.

지금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쌍계사 목장승 한쌍은 1백30여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황규호 기자>
1995-12-2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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