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패션/동양적 선·색살린「하이패션」창출(한국문화 세계화의길:6)

한복패션/동양적 선·색살린「하이패션」창출(한국문화 세계화의길:6)

김수정 기자 기자
입력 1995-03-03 00:00
수정 1995-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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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기술·비즈니스 연결 공동작업 필요/전문 세일즈맨 양성… 디자인 판촉도 강화

「할아버지의 바지저고리와 목도리를 연상시키는 투박한 재킷,가마니를 짠듯한 실크·울의 허리선이 높은 코트.색동색 무늬가 돋보이는 원피스」….93년 3월 세계패션의 메카 프랑스 파리.

장 폴 코르티에·이브 생 로랑·지아니 베르사체 등 세계 패션계를 이끌고 있는 기라성 같은 디자이너들의 화려한 컬렉션에 집중되던 언론과 패션전문가들의 시선이 한국에서 온 생소한 이름의 디자이너 이신우와 이영희를 비추기 시작했다.

『아직 세계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특히 선과 색이 무척 아름답다』­프랑스 국영2TV는 『일본에 이어 한국이 파리패션계를 노크하고 있다』고 호기심과 경계심 어린 반응을 보였다.

○이신우·이영희씨 진출

두 사람이 파리무대에서 첫선을 보인 옷의 기본은 색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적인 복식미의 선과 색을 살린 것.

20년간 한복의 현대화 작업을 해온 이영희씨는 파리로 입성하기 직전 양장디자이너로 변신,한복의 활용폭을넓혀 파리로 나온 것이다.

93년 10월에는 진태옥씨가 가세했다.그리고 지난해 봄에는 홍미화씨가 한국 특유의 정서인 해학을 느낄수 있는 옷들을,가을에는 안피가로 장광효등 남성 디자이너들까지 뛰어들었다.

컬렉션기간중 지면을 아껴온 파리의 패션전문지와 일간지들은 이영희씨의 의상을 한마디로 자연을 닮은 「바람의 옷」이라고 표현했다.

한국미 과시의 절정은 지난해 3월 이신우씨의 파리컬렉션에서 였다.

고구려 고분벽화 문양을 응용해 여성의 내재된 강한 힘을 표현한 이신우씨의 옷은 『고대아시아의 영광이 찬양한 아름다운 옷』이란 평을 받았으며 6백여벌의 주문을 받았다.이어 10월 진태옥씨는 우리 전통 혼례옷인 활옷을 서양의 진과 매치시켰다.실크 소재의 붉은색 바탕에 정교하게 십장생 수를 놓은 재킷 조끼등이 하이라이트였다. 일본의 원로 패션평론가 히로시 다나카는 진씨에게 편지를 보내 『한민족의 역사성에 대한 깊은 사색이 투명한 미의식에 의해 승화된 작품세계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범국가적 지원 따라야

한국의섬유산업은 지난 30년간 수출입국의 견인차 노릇을 해온 효자산업이다.그러나 근년들어 반도체·자동차등의 수출이 늘며 사양산업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푸대접을 받는 처지가 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세계 4대섬유수출국이다).이에 국내의 뜻있는 디자이너들은 한국복식의 선과 색을 살려 고부가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하이패션쪽으로 방향전환을 시도,과감히 파리 입성을 한것이다.

냉혹한 세계패션 무대에서 우리 디자이너들이 어느 정도 파리 패션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수 있었던 것은 90년대 이후 급부상한 동양풍 때문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지아니 베르사체등 내로라 하는 디자이너들이 너도 나도 중국이나 몽골의 대륙적인 분위기를 자신의 작품속에 응용했다.또한 자기민족 고유의 것이 세계화의 지름길이라는 「에스닉 이노베이션」의 분위기속에 그나마 성과를 올린 것이다.

그러나 파리 입성은 결코 만족할만한 수준이 못되고 있다.

「기모노 볼레로」­.이 말은 일본의 디자이너들이 세계무대에서 이미 「자포니즘」으로 확고히자리를 잡은 속에 앞으로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더 치열해져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충격적인 단어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패션지 「마리클레르」가 한 한국디자이너의 한복저고리 응용작을 보고 「기모노 볼레로」로 잘못 소개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 우리패션계에서는 세계패션시장의 스타로 떠오른 한국인 디자이너가 없고 국가적 지원도 전무한 상태에서 파리진출을 시도하는데 대해 「무모성」을 우려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상품기획·마케팅 취약

상품기획이나 마케팅 분야가 취약하기 짝이 없는 상태에서 디자이너 개인이 거대한 세계시장에 도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창조」와 「기술」 「비즈니스」­이세가지가 세계화 시대의 한국패션이 나가야할 길이라면 우리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면에서 너무 준비가 없이 홀로 뛰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패션관계자는 『우리 디자이너들은 현지 홍보자에게만 의지하는 실정이며 광고·홍보·마케팅 등 사전 조사가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탓에 독창적인한국패션의 디자인은 인정받으면서 정작 외국여성들의 인체비례등 신체조건을 잘 파악치 못해 재고를 늘린다는 것. 국제 바이어들에게 수주전을 펴는 전문세일즈맨을 두는등의 실질적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

디자이너들이 파리컬렉션에 참가하는 비용은 한번에 1억∼3억원정도. 돈만있으면 너도 나도 나갈수 있어 실속없이 외국인들의 주머니를 불린다는 소리도 듣고 있다.

겐조등이 유럽시장 진출에 성공한이후 지난 81년 일본 통산성은 11명의 디자이너를 선발, 미국 뉴욕 진출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을 썼다.

85년 프랑스에 유학, 세계적 패션업체인 파리의 기라로시사 여성복 수석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미경씨(35)는 『실크등 고급스런 소재와 꼼꼼한 바느질,한복의 선등이 파리에서 주목 받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지나치게 한국적인 옷을 내세우기보다는 독특한 선과 색으로 우회적인 공략을 해야한다고 한국패션의 세계화 전략방안을 말한다.

패션평론가 김청씨는 『60년대 국제복장학원의 최경자씨가 아리랑드레스를 만들어 한국패션의 세계화를 시도했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은 보다 세계인의 정서를 수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디자인이 나와야할 시기』라며 『한국적인 것을 구체화시키는 공동작업에 힘을 모을 것』을 강조한다.

국내디자이너들을 보면 디자이너 O씨는 모시나 삼베 실크등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날염하는데만 매달려 있다.또 디자이너 S씨는 도장찍듯 문양을 찍어나가는 작업만 하고 있다.그러나 이런 분산된 작업으로는 세계시장을 뚫을 수 없다. 작업내용들을 하나로 모으고 체계화시켜야한다.

패션은 문화산업이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사치라는 인식에 머물고 있다.패션산업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동시에 한국의 정신과 이미지등 유형무형의 것을 수출하는 길임을 생각할때 국가적인 지원과 관심은 시급해진다.<김수정 기자>

◎파리 패션계 입지다지는 진태옥씨/“전통적 고전미 현지 정서에 접목”/활옷·십장생 문양 응용해 호평받아(인터뷰)

『한국적인 것이 과연 무엇인가.또 어떻게 국제적인 감각으로 이를 수용해 유럽인들의 미의식을 파고 드는가가 늘 숙제였습니다』

30년 이상을 양장 디자인에 몰두하면서 지난 93년 가을이래 파리라는 세계무대에 자신의 작품을 제시,입지를 다지고 있는 진태옥씨.김영삼대통령의 유럽순방 수행경제인으로 선정돼 2일 장도에 오른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 작업실에서 만나보았다.22일 열리는 「95가을·겨울 파리프레타포르테(기성복)컬렉션」마무리 준비가 겹쳐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다.

『패션은 고부가가치의 산업입니다.우리 문화의 세일즈작업을 패션디자이너들이 맡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지난 가을 조선시대 결혼예복인 활옷을 응용,특유의 붉은 색상을 재현하고 십장생등 문양을 손수 수놓은 작품을 일부 제시해 현지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진씨는 『활옷을 응용한 재킷과 조끼상품에 십장생의 의미를 담은 설명서를 부착했는데 동양의 신선사상에 호기심을 갖는 상류층 유럽여성들에게 어필한것 같다』고 밝혔다.현지 미국 뉴욕의 도프굿맨 백화점 등에서 1천∼1천5백달러(재킷)의 고가에 팔린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진씨는 『「고전적」요소를 「아방가르드한」상품으로 재현한 활옷응용과 같은 작품으로 디자이너 「진태옥」의 정신세계와 한국문화의 정수를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고 자평하고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시장에 어울리는 보편적인 옷을 선보이는 디자이너로 인정받을때 진정한 「문화의 세계화」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김수정 기자>
1995-03-0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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