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가 남긴 것/허운나 한양대교수(일요일 아침에)

빌 게이츠가 남긴 것/허운나 한양대교수(일요일 아침에)

허운나 기자 기자
입력 1994-12-11 00:00
수정 1994-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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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짧은 일정으로 우리 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갔다.그가 도착한 다음날 아침,힐튼호텔에서 열린 조찬 강연회에서 그의 이야기를 감명 깊게 들었다.그는 이미 15세 때에 컴퓨터 칩의 등장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때 그 작은 칩의 엄청난 영향력과 중요성을 감지했다.이 10대 소년은 이때 이미 PC가 멀지않아 개개인 모두에게 유용한 도구가 되리라는 비전을 가졌고,그러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이에 주력하여 그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소프트웨어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말았다.이제 그는 컴퓨터 칩의 등장이 가져왔던 컴퓨터 혁명의 영향에 못지않은 새로운 혁명이 값싼 컴퓨터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이루어질 것임을 예언했다.그는 어떤 시스템하에서도 돌아갈 수 있는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소비자들에게 서비스해 줌으로써 『모든 정보를 손가락 끝에』라는 꿈을 그리고 있다.

그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 오면 우리의 삶은 획기적으로 변화된다.예컨대,일반 소비자들은 교통지옥을 뚫고 은행에 가서 서비스를 받기 위해,또는 병원에 가서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또 일정한 시간에 방영되는 TV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다른 일을 하다 서둘러 TV채널을 틀 필요도 없다.단지 은행이나 병원,홈무비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키만 누르면 손쉽게 앉아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비즈니스에서는 세계 각국에 있는 직원들끼리 전자통신을 통해 의견들을 즉각적으로 교환할 수 있다.마이크로소프트사는 세계 42개국에 퍼져있는 1만4천4백여명의 직원에게 전자통신으로 스프레드 시트만 보냄으로써 모든 대화를 대신한다.이미 선진국의 모든 대형회사들은 전자통신이 기본 사회간접시설로 되어있는 정보회사의 성격으로 변화하고 있고,종이문서에 근거해서 일하는 회사들은 국제경쟁력에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새삼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변화시키게 될 것인가에 생각이 미쳤다.이 세상은 바로 빌 게이츠와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조각된다.사람들을 대체로 세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첫째는 빌 게이츠와 같이 극소수이지만 그들의 영감과 통찰력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혁신자이다.또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들의 사상이나 생각을 재빨리 파악하여 활용해 나가는 혁신의 실천자들이다.그러나 나머지의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가져오는 변화에 쉽게 대응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며,점차 사회의 큰 흐름에서 소외되게 된다.이제 종합정보통신망(ISDN)이 보편화되어 멀티미디어 베이스 컴퓨터 네트워크가 현실로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우리가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삶의 형태는 자취를 감추게 될지 모른다.이 시대에서는 정신적·지적으로 앞서 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격차는 현재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 차이 이상으로 심각할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21세기를 대비한 새로운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막중해진다.이런 사회에서 특히 요구되는 능력은 정보공학의 활용과 관련된 전문능력 뿐아니라 작은 것에서도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그것의 결과를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이며,이런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이 필수적이다.한편 이런 능력과 더불어 필요한 것이 높은 휴머니즘과 깊은 심미적·예술적 감각일 것이다.그래야 그들이 설계하는 미래의 삶이 좀 더 인간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

마침 리셉션장에서 빌 게이츠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그에게 『당신 같은 몇몇의 비전가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컨트롤(조종)하게 되는군요』라고 말하자,그는 펄쩍 뛰면서 「조종」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나는 다시 웃으면서 『내가 단어를 잘못 썼군요.「컨트롤」이 아니라 「셰입(shape)」이지요』라고 말하자 그는 비로소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습니다.셰입이지요.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책임」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순간 나는 그와의 짧은 만남이 귀하게 가슴에 느껴졌다.타인간에 대한 비전가의 「책임」­수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창출해 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겸허한 책임의식,이것이 있는 한 사회의 앞날은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빌 게이츠는 21세기 교육을 준비하는 우리 교육자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 뿐아니라 깊은 「책임」의식을 가져야함을 새삼 내게 주고 떠났다.

1994-12-1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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