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끼리 하청생산… 철저히 공생/완제품 납품계약… 이익 절반 배분/“전문화가 능률적”… 영역 침범안해/부채 거의 “제로”… 무리한 사업확장 생각지도 않아
이탈리아 북동부의 교통중심지 베로나시에서 동남쪽으로 20㎞떨어진 론코시 스티졸리사.지난 45년 전쟁의 폐허속에서 여성 속옷 메이커로 출발,반세기동안 세계시장에 여성 정장을 팔아온 이지역 경제의 중심체이다.
이 회사는 생산라인이 하나도 없다.소재로 쓰이는 원단을 직접 짜고 샘플을 만드는 공정은 있다.그러나 막상 소비자가 사서 쓰는 완제품을 만드는 시설은 갖추지 않았다.그럼에도 지난해 자기상표로 1백억원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이중 50억원은 미국·영국·일본 등지에 수출했다.완제품은 전량 하청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수료를 받고 판매만 대행하는 무역업체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스티졸리사는 70년대말까지 완제품을 직접 만들었다.80년대들어 한국·대만·중국 등 후발개도국들의 저가공세가 거세지고 국내 임금이 급격히 높아지자 생산을 생산전문업체에 맡겨전문화를 모색했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대량생산을 위해 일부 공정만 하청주는 방식은 아니다.스티졸리사의 브랜드로 납품하지만 하청업체들은 모두 완제품을 만든다.생산 방식이나 기술도 스티졸리사와 똑같다.각 업체마다 만드는 옷이 전부 다르고 자기 상표로 옷을 만드는 곳도 있다.한마디로 스티졸리사의 세포를 다른곳에 이식한 셈이다.
스티졸리사는 이같은 하청업체들의 중심에서 두뇌구실을 한다.그렇다고 하청업체들이 기술이나 자금면에서 종속된 것은 아니다.똑같은 중소업체이면서 별도 법인으로 각기 독립성을 유지한다.이익도 혼자 챙기는 법이 없다.소비자 가격이 생산원가의 2배가 넘지만 유통과정에서 절반은 빠지고 나머지는 하청업체와 반반 나눈다.
○특정계층을 공략
하청업체들은 스티졸리사를 중심으로 반경 20㎞주변에 모두 자리잡고 있다.「마리 셀라」,「콜코라도」등 20여개 업체가 10여가지 제품을 만든다.언제든지 스티졸리사처럼 독자적인 판매망을 구축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스티졸리사를 정점으로 생산과 판매를이원화했다.
인구 5천명인 론코시 주민의 3분의1이상은 스티졸리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업체에서 일한다.스티졸리사는 패션의 흐름을 파악,소비자가 바라는 옷을 디자인하고 도매상으로부터 주문을 따내는 일을 한다.지난 1월에도 밀라노 전시회에 참여,2백50가지가 넘는 샘플에 대해 주문을 받았다.
아우렐리오 스티졸리(65)사장의 장남인 알베르토씨는 『하청을 통해 생산을 특화하면 일의 능률을 30%이상 높일수 있다』며 『계절적으로 유휴노동력이 많은 의류업체에 하청을 통한 생산의 전문화는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단일 품목으로 매년 1백억원 정도의 수출을 올리면서 근로자가 80명이 채 안되는 것은 생산의 전문화 때문이다.
스티졸리사가 택한 또 하나의 전략은 니치마켓(틈새시장),다시말해 다른 업체가 관심을 두지않는 특정 계층과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것이다.이에따라 30∼40대 여성만을 겨냥,재킷·코트·투피스에 전력을 다했다.그결과 옷의 가지수는 줄었으나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또 유행에 민감한 것보다 클래식하면서활동성이 강하고 편안한 제품을 만든 것도 주효했다.대기업을 쫓지않고 고객 스스로가 찾도록 하는 자기만의 시장을 구축,경쟁력을 키운 것이다.
베로나시에 자리잡은 로마르사도 40여개의 하청업체를 거느리고 있다.그러나 군림하지는 않는다.중세의 길드같은 조직으로 판매망을 일원화해 상호간의 과당경쟁을 없앴다.대부분 자기상표를 갖고 있으면서도 공생관계는 철저히 지킨다.하청업체의 근로자수는 평균 10여명 안팎이다.
○근로자 10명 안팎
토스카나주의 피렌체시 남쪽 토리첼라지역에서 비즈니스 여성을 위한 정장을 생산하는 폴베레사.지난 80년 사장인 파비오 카시씨와 친구인 로베르토 키아베씨가 공동 설립했다.70년대 독자적인 생산체제를 갖고있다가 하청구조로 전환했다.근로자는 20명이고 디자인은 키아베씨가 직접 한다.
이 회사는 생산 전문화를 위해 설립초기부터 하청업체를 키우다시피 했다.자기만의 생산기술을 알려주고 자금이 부족하면 대주기도 했다.그러나 경영에 간섭하거나 납품대금을 늦춘적은 한번도 없다.가능한한 현금이나 수표로 결제했고 경영의 안정성을 위해 10년간 거래처를 바꾸지 않았다.대신 주문한 디자인이나 샘플에 맞추지 못하면 절대 납품을 받지않았다.
설립 15년만에 피렌체 지방에서 손꼽히는 중견업체로 성장했다.역시 틈새시장전략을 구사,20∼30대 활동 여성들을 위한 실용성과 패션을 겸비한 옷을 만들었다.
파비오씨는 『생산공정을 갖는 것은 비효율적이다.디자인하고 샘플을 만든뒤 전시회에 참가,주문을 받고 하청주는 데에도 손이 달린다.생산체제를 갖추거나 사업규모를 늘리는 것은 제품의 질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도움 안바라
하청구조를 택한 회사들의 또한가지 공통된 특징은 부채비율이 「0」에 가깝다는 것이다.일찍이 비용절감을 위해 생산 전문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적정규모를 넘는 사업확대는 있을수 없다.힘들다 싶으면 아예 주문을 받지 않는게 철칙이다.따라서 자금이 쪼달리지 않고 웬만한 불황도 거뜬히 넘긴다.
경기가 좋을때 앞뒤 가릴것 없이 사업을 늘리다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맥없이 무너지는 우리 중소업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물론 산업구조적인 문제,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인력구조등 종소업체가 겪는 어려움이 산적했다.구조적인 문제는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이다.다른 것은 정부의 도움은 일체 바라지 않고 재투자에 의한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중소 패션업체들이 세계시장을 넘나드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게 아니다.중소업체들끼리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을 무리하게 운영하지 않는 점,최소 인원으로 최대 효과를 보는 평범한 경제원리를 철저히 지키는게 전부이다.<베로나=글 백문일·사진 박영군특파원>
이탈리아 북동부의 교통중심지 베로나시에서 동남쪽으로 20㎞떨어진 론코시 스티졸리사.지난 45년 전쟁의 폐허속에서 여성 속옷 메이커로 출발,반세기동안 세계시장에 여성 정장을 팔아온 이지역 경제의 중심체이다.
이 회사는 생산라인이 하나도 없다.소재로 쓰이는 원단을 직접 짜고 샘플을 만드는 공정은 있다.그러나 막상 소비자가 사서 쓰는 완제품을 만드는 시설은 갖추지 않았다.그럼에도 지난해 자기상표로 1백억원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이중 50억원은 미국·영국·일본 등지에 수출했다.완제품은 전량 하청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수료를 받고 판매만 대행하는 무역업체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스티졸리사는 70년대말까지 완제품을 직접 만들었다.80년대들어 한국·대만·중국 등 후발개도국들의 저가공세가 거세지고 국내 임금이 급격히 높아지자 생산을 생산전문업체에 맡겨전문화를 모색했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대량생산을 위해 일부 공정만 하청주는 방식은 아니다.스티졸리사의 브랜드로 납품하지만 하청업체들은 모두 완제품을 만든다.생산 방식이나 기술도 스티졸리사와 똑같다.각 업체마다 만드는 옷이 전부 다르고 자기 상표로 옷을 만드는 곳도 있다.한마디로 스티졸리사의 세포를 다른곳에 이식한 셈이다.
스티졸리사는 이같은 하청업체들의 중심에서 두뇌구실을 한다.그렇다고 하청업체들이 기술이나 자금면에서 종속된 것은 아니다.똑같은 중소업체이면서 별도 법인으로 각기 독립성을 유지한다.이익도 혼자 챙기는 법이 없다.소비자 가격이 생산원가의 2배가 넘지만 유통과정에서 절반은 빠지고 나머지는 하청업체와 반반 나눈다.
○특정계층을 공략
하청업체들은 스티졸리사를 중심으로 반경 20㎞주변에 모두 자리잡고 있다.「마리 셀라」,「콜코라도」등 20여개 업체가 10여가지 제품을 만든다.언제든지 스티졸리사처럼 독자적인 판매망을 구축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스티졸리사를 정점으로 생산과 판매를이원화했다.
인구 5천명인 론코시 주민의 3분의1이상은 스티졸리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업체에서 일한다.스티졸리사는 패션의 흐름을 파악,소비자가 바라는 옷을 디자인하고 도매상으로부터 주문을 따내는 일을 한다.지난 1월에도 밀라노 전시회에 참여,2백50가지가 넘는 샘플에 대해 주문을 받았다.
아우렐리오 스티졸리(65)사장의 장남인 알베르토씨는 『하청을 통해 생산을 특화하면 일의 능률을 30%이상 높일수 있다』며 『계절적으로 유휴노동력이 많은 의류업체에 하청을 통한 생산의 전문화는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단일 품목으로 매년 1백억원 정도의 수출을 올리면서 근로자가 80명이 채 안되는 것은 생산의 전문화 때문이다.
스티졸리사가 택한 또 하나의 전략은 니치마켓(틈새시장),다시말해 다른 업체가 관심을 두지않는 특정 계층과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것이다.이에따라 30∼40대 여성만을 겨냥,재킷·코트·투피스에 전력을 다했다.그결과 옷의 가지수는 줄었으나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또 유행에 민감한 것보다 클래식하면서활동성이 강하고 편안한 제품을 만든 것도 주효했다.대기업을 쫓지않고 고객 스스로가 찾도록 하는 자기만의 시장을 구축,경쟁력을 키운 것이다.
베로나시에 자리잡은 로마르사도 40여개의 하청업체를 거느리고 있다.그러나 군림하지는 않는다.중세의 길드같은 조직으로 판매망을 일원화해 상호간의 과당경쟁을 없앴다.대부분 자기상표를 갖고 있으면서도 공생관계는 철저히 지킨다.하청업체의 근로자수는 평균 10여명 안팎이다.
○근로자 10명 안팎
토스카나주의 피렌체시 남쪽 토리첼라지역에서 비즈니스 여성을 위한 정장을 생산하는 폴베레사.지난 80년 사장인 파비오 카시씨와 친구인 로베르토 키아베씨가 공동 설립했다.70년대 독자적인 생산체제를 갖고있다가 하청구조로 전환했다.근로자는 20명이고 디자인은 키아베씨가 직접 한다.
이 회사는 생산 전문화를 위해 설립초기부터 하청업체를 키우다시피 했다.자기만의 생산기술을 알려주고 자금이 부족하면 대주기도 했다.그러나 경영에 간섭하거나 납품대금을 늦춘적은 한번도 없다.가능한한 현금이나 수표로 결제했고 경영의 안정성을 위해 10년간 거래처를 바꾸지 않았다.대신 주문한 디자인이나 샘플에 맞추지 못하면 절대 납품을 받지않았다.
설립 15년만에 피렌체 지방에서 손꼽히는 중견업체로 성장했다.역시 틈새시장전략을 구사,20∼30대 활동 여성들을 위한 실용성과 패션을 겸비한 옷을 만들었다.
파비오씨는 『생산공정을 갖는 것은 비효율적이다.디자인하고 샘플을 만든뒤 전시회에 참가,주문을 받고 하청주는 데에도 손이 달린다.생산체제를 갖추거나 사업규모를 늘리는 것은 제품의 질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도움 안바라
하청구조를 택한 회사들의 또한가지 공통된 특징은 부채비율이 「0」에 가깝다는 것이다.일찍이 비용절감을 위해 생산 전문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적정규모를 넘는 사업확대는 있을수 없다.힘들다 싶으면 아예 주문을 받지 않는게 철칙이다.따라서 자금이 쪼달리지 않고 웬만한 불황도 거뜬히 넘긴다.
경기가 좋을때 앞뒤 가릴것 없이 사업을 늘리다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맥없이 무너지는 우리 중소업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물론 산업구조적인 문제,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인력구조등 종소업체가 겪는 어려움이 산적했다.구조적인 문제는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이다.다른 것은 정부의 도움은 일체 바라지 않고 재투자에 의한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중소 패션업체들이 세계시장을 넘나드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게 아니다.중소업체들끼리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을 무리하게 운영하지 않는 점,최소 인원으로 최대 효과를 보는 평범한 경제원리를 철저히 지키는게 전부이다.<베로나=글 백문일·사진 박영군특파원>
1994-05-08 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