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륭정밀의 품질혁신(국제화 앞서간다:10)

대륭정밀의 품질혁신(국제화 앞서간다:10)

김현철 기자 기자
입력 1994-01-25 00:00
수정 1994-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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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 기술연 설립… 세계시장 30% 석권/위성방송 수신기 생산… 비에 공장 설립/매출 5% 기술투자… “반품률 0.1%”

국제화는 대기업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그리고 대기업들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자본금 3억원으로 출발,창업 11년만에 매출액 1천억원대를 기록하고 세계적인 위성방송 수신기 제조업체로 떠오른 (주)대륭정밀(대표 권성우)은 중소기업 국제화의 표본이다.

이 회사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가올 무한경쟁 시대를 예측,단계적인 국제화 전략을 마련했다.우선 생산 부문에선 지난 91년 필리핀 카비테 수출공단에 자본금 38억원을 들여 현지 생산공장을 설립했다.인건비와 시설 단가의 상승에 대비하고 경제블록화에 따른 장벽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 기술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이듬 해에는 미국에 기술개발 연구소를 설치하고 수석 연구원 6명 중 5명을 미국인 박사로 구성했다.85년 설립된 국내의 전자기술 연구소가 제품의 불량률과 기능의 제고를 주로 연구하는데 비해 미국의 연구소는 핵심부품과 응용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뤄양자간의 조화를 이뤘다.

판매와 관련해선 이달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현지 판매법인을 설치,유럽지역의 거점을 확보했다.이로써 생산·개발·판매 세 부문에서 고루 국제 경쟁력을 갖췄다.

하지만 대륭은 위성방송 수신기와 차량속도 경보기(스피드건 탐지기) 등 고주파 통신장비를 주로 생산하는 탓에 국제화 전략도 특히 기술개발과 품질혁신에 치중했다.

매출액 중 5%를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대륭은 경영 합리화를 위해 모든 부문에 인력 TO를 두고 있으나 유독 연구부문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양질의 인재만 있으면 언제든지 채용하겠다는 뜻이다.

또 품질이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해외 소비자들의 불만 해소에 주력했다.값이 싸더라도 품질이 형편없으면 팔리지 않는 반면 가격이 다소 비싸도 품질이 우수한 제품은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중시한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 90년의 「프로젝트 99」 운동.이는 제품의 불량률을 1%대로 낮추자는 캠페인으로,연구소와 현업부서가 협력해 5% 정도였던 불량률을 1%대로 낮췄다.이 때문에 해외 바이어들의 주문이 쇄도,급성장 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얼마 전부터는 「프로젝트 999」라는 이름의 제2 단계 품질혁신 운동을 새로 시작했다.이것은 반품률을 0.1%로 낮추자는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이 회사는 위성방송 수신기 부문에서 일본의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시장의 3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미주지역에서 50%,유럽지역에서 40%,아시아와 기타지역에서 20%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미국 GI(General Instrument)사가 지난 86년 일본의 히다치 대신 대륭을 신규 공급선으로 선택한 것도 기술과 품질에서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륭은 마케팅과 R&D 및 고부가가치 상품은 국내 본사가 담당하고,소량 다품종 생산은 해외 현지공장이 맡는다는 역할분담 계획아래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다.또 지금까지 전체 생산액의 70% 가량을 차지한 위성방송 수신기 대신 새로운 첨단 고부가가치 통신제품을 향후 5년내에 개발한다는 목표도 세워 놓고 있다.

구로 3공단에 있는 조그만 중소기업,종업원 6백50명이 전부인 회사도 대기업 못지않게 기술개발과 품질관리를 통해 국제화 시대를 맞고있다.<김현철기자>

◎혁신의 비결/불량품 생기면 즉각 “기계 스톱”/철저한 품질관리 노사화합도 한몫

대륭정밀의 창업자는 현재의 이훈 회장이다.미국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한국반도체(삼성전자에 흡수 합병된 삼성반도체 통신의 전신)대표이사 전무와 대영전자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전문기술·경영인이다.

82년 자본금 3억원으로 시작해 88년 은탑산업훈장,90년 한국능률협회 최우수 기업상,91년 금탑산업훈장과 1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창립 9년만에 대륭을 「기적의 기술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이 회사는 지금 위성방송 수신기 부문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다.그 계기는 지난 86년에 마련됐다.미국의 GI사가 전파암호 해독장치인 디스크램블러를 OEM 방식으로 공급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부터다.

GI로부터 디스크램블러의 공급을 제의받은 업체는 대륭 이외에도 삼성전자·삼성전기·현대전기 등이 있었다.이 가운데 삼성과 대륭이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는데 당시 제품단가·기업 신뢰도·자동설비 등에서 앞선 삼성이 먼저 미국측과 가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삼성은 GI측의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못해 결국 대륭이 이 사업을 맡았다.이때부터 GI측은 대륭의 실력에 놀라기 시작했다.자신들이 요구한 기한보다 무려 두달이나 먼저 제품을 출하하는가 하면 기술 차원에서도 일본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대륭의 고도성장은 신제품을 개발하고 양산에 돌입하고도 일정비율 이상의 불량률이 발생하면 즉각 라인을 세우는 철저한 품질관리에 기인한다.여기엔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그 바탕이 됐다. 이 회사는 창립 11년 동안 단 한번도 노사분규를 겪지 않았다.구로공단이 온통 분규로 들끓던 80년대 말에도 이 곳에서는 이렇다 할 동요가 없었다.이훈 회장과 권성우 사장의 인격 존중의 경영관이 밑거름이 된 것이다.

지난 해 9백80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렸고,올해는 1천2백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매년 15% 이상의 꾸준한 성장을 이룩한 탓에 외형은 중소기업이지만,경영은 대기업과 어깨를 겨루며 세계를 지향할 수 있었다.
1994-01-2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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