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절단,안익태선생 말년보낸 마요르카 방문/현지선 일식이름 「에키타이안」을 통용/시당국에 「익 태안」으로 정정을 요구
「에키타이 안(Ekitai Ahn)」은 누구인가.
적어도 우리들의 이름에서 만큼은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해 오던 일제의 흔적이 지중해의 고도 마요르카에는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다.
「에키타이 안」.안익태의 일본식 발음이다.
애국가의 작곡자,또 애국가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한국환상곡」의 작곡자 안익태선생은 그가 만년을 보냈고 숨을 거둔 이곳 팔마 데 마요르카에서는 지금도 「에키타이 안」으로 불려지고 있다.
스페인령 발레아레스제도의 주도 팔마데 마요르카에는 그를 기념하는 거리가 있다.그러나 이곳의 팻말에도 「익태 안 거리」가 아니라 「에키타이 안 거리」라고 씌어있다.「카예 에키타이 안」.일본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을 기념하는 거리인 것이다.
마요르카섬에 살고 있는 50세이상의 중·노년층은 대부분 50년대에서 60년대초까지 마요르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열정적으로 지휘해 항상 객석을 가득 채웠던 마에스트로 안을 기억하고 있다.마요르카의 택시운전사들도 대부분 그를 기억하고 그의 거리와 그가 실던 집으로 데려다 준다.
그러나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익태 안이 아닌 「에키타이 안」이었다.
유럽을 순방하고 있는 한국문화사절단의 공연이 팔마의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22일 아침.이곳에서 발행되는 「발레아레스」신문에는 음악평론가 마누엘 산토라리오의 기고가 실렸다.이들의 제목도 「에키타이 안과 코리아」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일본사람과 한국」이라는 기묘한 제목인 셈이다.
더욱 이상한 일은 이날 하오10시부터 있었던 한국문화사절단의 공연현장에서 벌어졌다.마요르카공연을 현지에서 준비한 조갑동 주바르셀로나 총영사도 인사말을 통해 안익태선생을 「에키타이 안」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국내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다만 한가지 다행한 일이 있다면 안익태선생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인식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음악평론가 산토라리오도 기고에서 『애국가를 작곡한 한국의 영웅 에키타이 안의 생전의 면모를 다시 보고 싶으면 오늘 한국문화사절단의 공연을 꼭 봐야 한다』고 썼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마요르카에 살고 있는 선생의 미망인 롤리타여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제치하에서 오스트리아의 빈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선생은 당연히 일본당국이 발급한 여권을 가지고 있었고 물론 성명란에도 「에키타이 안」이라고 씌어 있었다.따라서 그의 공식적인 이름은 「에키타이 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그러나 당시에 자신을 「에키타이」보다는 「익태」또는 「익타이」로 소개했다고 한다.그러나 유럽사람들에게 한국식 발음보다는 일본식 발음이 편했고 또 음악회를 알리는 포스터와 팸플릿 등에도 「에키타이」라고 써 있으니 그의 명성이 높아갈수록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마요르카의 현실에 접한 문화사절단 일행은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단장인 이승렬국립국악원장과 황병기교수(이화여대)등 사절단 대표는 이날 공연장을 찾은 팔마시 당국자들에게 안익태선생의 표기를 「에키타이 안」에서 「익태 안」으로 바로 잡아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물론 이 뜻이 받아들여져 거리의 이름도,신문기사도 「익태 안」으로 씌어질 날이 곧 올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요르카 사람들은 좀 더 오래 선생을 「에키타이 안」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마요르카=서동철기자>
「에키타이 안(Ekitai Ahn)」은 누구인가.
적어도 우리들의 이름에서 만큼은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해 오던 일제의 흔적이 지중해의 고도 마요르카에는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다.
「에키타이 안」.안익태의 일본식 발음이다.
애국가의 작곡자,또 애국가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한국환상곡」의 작곡자 안익태선생은 그가 만년을 보냈고 숨을 거둔 이곳 팔마 데 마요르카에서는 지금도 「에키타이 안」으로 불려지고 있다.
스페인령 발레아레스제도의 주도 팔마데 마요르카에는 그를 기념하는 거리가 있다.그러나 이곳의 팻말에도 「익태 안 거리」가 아니라 「에키타이 안 거리」라고 씌어있다.「카예 에키타이 안」.일본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을 기념하는 거리인 것이다.
마요르카섬에 살고 있는 50세이상의 중·노년층은 대부분 50년대에서 60년대초까지 마요르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열정적으로 지휘해 항상 객석을 가득 채웠던 마에스트로 안을 기억하고 있다.마요르카의 택시운전사들도 대부분 그를 기억하고 그의 거리와 그가 실던 집으로 데려다 준다.
그러나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익태 안이 아닌 「에키타이 안」이었다.
유럽을 순방하고 있는 한국문화사절단의 공연이 팔마의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22일 아침.이곳에서 발행되는 「발레아레스」신문에는 음악평론가 마누엘 산토라리오의 기고가 실렸다.이들의 제목도 「에키타이 안과 코리아」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일본사람과 한국」이라는 기묘한 제목인 셈이다.
더욱 이상한 일은 이날 하오10시부터 있었던 한국문화사절단의 공연현장에서 벌어졌다.마요르카공연을 현지에서 준비한 조갑동 주바르셀로나 총영사도 인사말을 통해 안익태선생을 「에키타이 안」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국내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다만 한가지 다행한 일이 있다면 안익태선생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인식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음악평론가 산토라리오도 기고에서 『애국가를 작곡한 한국의 영웅 에키타이 안의 생전의 면모를 다시 보고 싶으면 오늘 한국문화사절단의 공연을 꼭 봐야 한다』고 썼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마요르카에 살고 있는 선생의 미망인 롤리타여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제치하에서 오스트리아의 빈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선생은 당연히 일본당국이 발급한 여권을 가지고 있었고 물론 성명란에도 「에키타이 안」이라고 씌어 있었다.따라서 그의 공식적인 이름은 「에키타이 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그러나 당시에 자신을 「에키타이」보다는 「익태」또는 「익타이」로 소개했다고 한다.그러나 유럽사람들에게 한국식 발음보다는 일본식 발음이 편했고 또 음악회를 알리는 포스터와 팸플릿 등에도 「에키타이」라고 써 있으니 그의 명성이 높아갈수록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마요르카의 현실에 접한 문화사절단 일행은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단장인 이승렬국립국악원장과 황병기교수(이화여대)등 사절단 대표는 이날 공연장을 찾은 팔마시 당국자들에게 안익태선생의 표기를 「에키타이 안」에서 「익태 안」으로 바로 잡아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물론 이 뜻이 받아들여져 거리의 이름도,신문기사도 「익태 안」으로 씌어질 날이 곧 올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요르카 사람들은 좀 더 오래 선생을 「에키타이 안」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마요르카=서동철기자>
1992-06-2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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