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가 낮에 찾아야 하는 곳이라면, 백양사는 이른 아침에 찾아야 한다. 첫째는 교통 때문이고, 둘째는 풍경을 비추는 빛의 흐름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단풍철이면 백양사로 드는 길은 몸살을 앓는다. 오전 7시만 돼도 주차장은 가득 차고, 2~3㎞ 떨어진 진입로 초입부터 주차전쟁이 벌어진다. 이 같은 현상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이 탓에 사정을 아는 이들은 해도 뜨기 전에 백양사를 찾는다. 어둑어둑한 길을 따라 백암산 상왕봉(741m)까지 오른 뒤 되짚어 내려오며 햇살 가득한 백양사 단풍을 즐긴다.
백암산의 기세가 장하다. 백양사 뒤쪽 산자락을 헤집고 불끈 솟았다. 희고 단단한 암봉들은 ‘말근육’을 닮았다. 산은 이 풍경만으로도 뭇 여행자들의 시선을 단박에 휘어잡는다.
백암산은 정읍 쪽의 내장산(763m)과 더불어 내장산 국립공원의 양대 축을 이룬다. 이름값으로는 국립공원 들머리에서 내장사까지 약 3㎞의 단풍터널이 다소 앞선다. 하지만 백양사 일대 또한 단풍길을 정성껏 가꾼 덕에 경중을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방문객이 늘었다.
매표소에서 백양사 입구까지 1.5㎞에 이르는 길이 아름답다. 봄철 벚꽃으로 이름난 이 길. 가을이면 단풍으로 또 한 번 절경을 이룬다. 단풍길은 한눈에 담기지 않는다. 이리 굽고 저리 휘었기 때문이다. 보일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우는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하나다.
널리 알려졌듯 백양사 일대 단풍나무의 수종은 ‘애기단풍’이 다수다. 앙증맞은 잎은 어린아이 손바닥을 닮아 얇고 크기도 작다. 그 덕에 햇빛을 잘 받아들여 고루 붉은 빛을 띤다. 한데 붉은 빛 일색이어서야 국내 첫손 꼽히는 단풍 명소가 되기는 어려울 터. 700년을 살아왔다는 국내 최고령 갈참나무와 벚나무, 은행나무 등이 여러 빛깔의 숲 터널을 만들어 힘을 보탠다. 어느 나무 하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체와 어울리지 않는 나무 또한 찾을 수 없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아름다움이다.
오색빛 숲 그늘 속을 자박자박 걷다 보면 느닷없이 하늘이 열린다. 운문암과 천진암 등 두 계곡을 적신 물이 만나 연못을 이뤘고, 그 위로 쌍계루(雙溪樓)가 날아갈 듯 앉아 있다. 연못은 쌍계루와 멀리 뒤쪽에 우뚝 선 백학봉을 그대로 비춰 낸다. 자연이 그린 데칼코마니다. 위와 아래 어느 쪽이 실경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선연하다. ‘백양제일경’이라 불리는 풍경 앞에 서니 언뜻 데자뷔가 느껴진다. 당연한 노릇이다. 단풍철이면 온·오프라인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사진의 실제 무대니 말이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은 이곳을 ‘국민 포인트’라 부르기도 한다.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는 연못 왼쪽 위에 터를 잡았다. 총림은 선원(禪院)과 강원(講院),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대가람을 뜻한다. 한데 백양사는 대찰 특유의 위압감이 없다. 외려 소박하고 단아하다. 대웅전 뒤편엔 팔층석탑이 우뚝하다.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하는 탑이다. 탑신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3과가 모셔졌다고 전해진다. 탑 옆으로는 단풍나무가, 뒤로는 백학봉이 병풍처럼 둘러쳤다.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한 거의 모든 조건이 갖춰진 셈. 이런 곳에서라면 카메라의 종류를 따지는 게 부질없다. 탑 옆에 서서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작품 사진 완성이다.
여기까지가 우리 땅에서 단풍이 빚어내는 최고의 풍광이다. 예서 발길을 돌려도 나무랄 데 없는 단풍 여정이다. 한데 힘이 남았다면 약사암까지는 올라보길 권한다. 약사암은 백양사와 일대 풍경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다. 백양사에서 1㎞쯤 떨어졌다. 길도 호젓하다. 끝자락에 ‘깔딱고개’가 있지만 못 오를 정도는 아니다. 암자는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았다. 발 아래 펼쳐지는 풍광이 기막히다. 절벽 끄트머리에 쉼터가 조성돼 있다. 새빨간 단풍나무 사이로 백양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글 사진 장성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국민 포인트’ ‘백양제일경’ 등 다양한 표현으로 칭송 받는 쌍계루 일대의 가을 풍경.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건 우리 땅에서 단풍이 빚어내는 최고의 풍경 가운데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백암산은 정읍 쪽의 내장산(763m)과 더불어 내장산 국립공원의 양대 축을 이룬다. 이름값으로는 국립공원 들머리에서 내장사까지 약 3㎞의 단풍터널이 다소 앞선다. 하지만 백양사 일대 또한 단풍길을 정성껏 가꾼 덕에 경중을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방문객이 늘었다.
매표소에서 백양사 입구까지 1.5㎞에 이르는 길이 아름답다. 봄철 벚꽃으로 이름난 이 길. 가을이면 단풍으로 또 한 번 절경을 이룬다. 단풍길은 한눈에 담기지 않는다. 이리 굽고 저리 휘었기 때문이다. 보일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우는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하나다.
널리 알려졌듯 백양사 일대 단풍나무의 수종은 ‘애기단풍’이 다수다. 앙증맞은 잎은 어린아이 손바닥을 닮아 얇고 크기도 작다. 그 덕에 햇빛을 잘 받아들여 고루 붉은 빛을 띤다. 한데 붉은 빛 일색이어서야 국내 첫손 꼽히는 단풍 명소가 되기는 어려울 터. 700년을 살아왔다는 국내 최고령 갈참나무와 벚나무, 은행나무 등이 여러 빛깔의 숲 터널을 만들어 힘을 보탠다. 어느 나무 하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체와 어울리지 않는 나무 또한 찾을 수 없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아름다움이다.
오색빛 숲 그늘 속을 자박자박 걷다 보면 느닷없이 하늘이 열린다. 운문암과 천진암 등 두 계곡을 적신 물이 만나 연못을 이뤘고, 그 위로 쌍계루(雙溪樓)가 날아갈 듯 앉아 있다. 연못은 쌍계루와 멀리 뒤쪽에 우뚝 선 백학봉을 그대로 비춰 낸다. 자연이 그린 데칼코마니다. 위와 아래 어느 쪽이 실경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선연하다. ‘백양제일경’이라 불리는 풍경 앞에 서니 언뜻 데자뷔가 느껴진다. 당연한 노릇이다. 단풍철이면 온·오프라인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사진의 실제 무대니 말이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은 이곳을 ‘국민 포인트’라 부르기도 한다.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는 연못 왼쪽 위에 터를 잡았다. 총림은 선원(禪院)과 강원(講院),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대가람을 뜻한다. 한데 백양사는 대찰 특유의 위압감이 없다. 외려 소박하고 단아하다. 대웅전 뒤편엔 팔층석탑이 우뚝하다.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하는 탑이다. 탑신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3과가 모셔졌다고 전해진다. 탑 옆으로는 단풍나무가, 뒤로는 백학봉이 병풍처럼 둘러쳤다.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한 거의 모든 조건이 갖춰진 셈. 이런 곳에서라면 카메라의 종류를 따지는 게 부질없다. 탑 옆에 서서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작품 사진 완성이다.
여기까지가 우리 땅에서 단풍이 빚어내는 최고의 풍광이다. 예서 발길을 돌려도 나무랄 데 없는 단풍 여정이다. 한데 힘이 남았다면 약사암까지는 올라보길 권한다. 약사암은 백양사와 일대 풍경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다. 백양사에서 1㎞쯤 떨어졌다. 길도 호젓하다. 끝자락에 ‘깔딱고개’가 있지만 못 오를 정도는 아니다. 암자는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았다. 발 아래 펼쳐지는 풍광이 기막히다. 절벽 끄트머리에 쉼터가 조성돼 있다. 새빨간 단풍나무 사이로 백양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글 사진 장성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2013-11-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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