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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의 소머리 무당 정하담

“이 정도까지 예상하지는 못했는데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어 정말 감사하고 기분이 좋네요.”

정하담은 앞으로 연기는 물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할 요량이다. 최근 모로코 마라케시 국제영화제에서 세계적인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게 극찬을 받으며 대화를 나눴지만 정작 “생큐” 정도밖에 말하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고.<br>남상인 선임기자 sanginn@seoul.co.kr
얼마 전 막을 내린 국내 최대 독립영화 잔치인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스틸 플라워’가 으뜸 화제작이었다. 모질게 몰아치는 세상에 당당히 맞서는 소녀 ‘하담’을 그린 이 작품은 최고상인 대상을 받았다. ‘하담’을 연기한 정하담(21)은 최우수연기상 격인 독립스타상을 거머쥐었다. 곧이어 날아간 ‘아프리카의 칸’ 모로코 마라케시 국제영화제에선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장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많은 대사 없이도 하담의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매우 감동적인 경험이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석영 감독이 연출한 ‘스틸 플라워’와 ‘들꽃’ 연작을 통해 주목받는 배우가 된 정하담은 박수갈채가 얼떨떨하다며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연기 경력이 전무했기에 더욱 그렇다. 중·고등학교 때는 천명관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평범한 문학 소녀였다. 원래 꿈도 소설가였다. 고교 시절 연극반 활동에서 움튼 배우의 꿈은 대학 입학 뒤에야 뒤늦게 피어났다. 연극영화과 입학을 위해 재입시를 치렀지만 낙방의 연속이었다.

“실기에서 사시나무처럼 떨었어요.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오디션을 찾게 됐죠. 경력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다고 해서 다섯 차례 면접을 치른 끝에 처음 출연한 작품이 ‘들꽃’이에요. 저 때문에 작품을 망쳐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이 정말 많았죠.”

험난한 세상을 떠도는 가출 소녀 세 명을 담은 ‘들꽃’으로 연기와 인연을 맺은 정하담은 ‘스틸 플라워’에 이어 박 감독의 차기작인 ‘애쉬 플라워’에도 출연한다. 이 작품은 가족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상업영화로는 ‘검은 사제들’에 나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소머리를 등에 지고 나와 굿을 하던 소녀 무당이 바로 그다. 첫걸음에 흥행의 달콤함과 쓴맛을 동시에 맛봤다. 짧게 얼굴을 비친 ‘검은 사제들’은 흥행 돌풍을 일으켰으나 ‘들꽃’은 1000여명에 그쳤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호평받았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이번에 상을 받으며 감독님과 스태프 모두 힘을 낼 수 있게 돼서 정말 좋아요. 정작 제 자신은 ‘들꽃’의 하담에 익숙한데 소녀 무당으로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 신기하기도 해요. 그래도 ‘검은 사제들’을 봤다가 ‘들꽃’까지 보게 됐다는 분도 있어서 좋았어요. 내년에 개봉하는 ‘스틸 플라워’는 많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몰아치는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탭댄스를 추는 ‘스틸 플라워’의 마지막 장면처럼 정하담도 꿋꿋하게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간다는 각오다. 대선배인 김혜자와 쥘리에트 비노슈처럼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고 싶다며 커다란 눈망울을 빛냈다. “먼 훗날 나이가 들었을 때 세상을 따뜻하게 살았다는 느낌을 주는 얼굴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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