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롯한 신흥국들 주식 시대 개막은 ‘시기상조’
세계 투자 자금이 채권시장을 떠나 주식시장으로 쏠리는 ‘그레이트 로테이션(Rotation)’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선진국 시장에서는 자금이 채권에서 주식으로 향하는 ‘주식의 시대’가 개막하고 있으나 한국 등 신흥국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증시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 자금 흐름, 주식으로 넘어가
5일 펀드정보업체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4주간 선진국 주식형 펀드에 492억300만 달러(약 54조9천억원)가 순유입돼 1.02%의 높은 유입강도(총자산 대비 유입액)를 보였다.
이 기간 선진국 채권형 펀드에도 39억6천800만 달러가 유입되기는 했으나 유입강도는 0.16%로 선진국 주식형 펀드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특히 최근 한 주간(7월 15∼31일)은 선진국 채권형 펀드에서 8억1천500만 달러가 순유출됐고, 그중에서도 북미 지역의 채권에서만 12억3천700만 달러가 빠져나가 같은 지역이라도 주식시장에 투자자들이 편향되는 현상이 더욱 뚜렷했다.
노상원 동부증권 연구원은 “북미 지역에서 지방채 자금 유출이 지속하고 있는데다, 최근 2주 동안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던 하이일드 자금이 소폭 유출로 전환하면서 투자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신흥국 채권형 펀드는 최근 4주간 유출액 45억4천700만 달러에 유출강도 1.88%로, 그야말로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미국 CNBC 방송도 투자정보업체 트림탭스의 자료를 인용, 지난 달에 미국 주식 뮤추얼펀드·상장지수펀드(EFT)에 사상 최대치인 403억 달러가 유입됐으나 채권 펀드에서는 211억 달러가 빠져나가 투자자들이 채권과의 ‘연애’를 끝냈다고 보도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에 대해 5∼6월 미국 출구전략 관측에 글로벌 시장이 요동치자 투자 자금이 단기 부동화하는 현상을 보였지만, 점차 투자심리가 그나마 나은 선진국 주식으로 자금이 움직이면서 채권시장과 차별화를 시작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5월과 6월이 출구전략 우려로 주식과 채권의 동반 이탈이 발생한 시기였다면, 7월은 ‘버냉키 쇼크’에 대한 주식의 회복력이 채권보다 강했던 위기 회복 구간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런 흐름은 주식과 채권시장 사이에서 자금이 추세적으로 이동하는 회전 주기가 시작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자금시장에서 ‘채권의 시대’가 가고 ‘주식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식과 채권간 로테이션은 약 2년간 사이클을 형성했는데, 실제로 2013년 초부터 채권보다 주식의 초과 수익률이 높아지고 있다”며 “8월에는 주식으로의 자금 쏠림이 더 선명해져 로테이션의 모양을 갖춰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한국 등 신흥국 주식시장은 해당 사항 없어
다만 채권에서 주식으로의 전환은 ‘대대적’(great)이기보다는 ‘점진적’(gradual)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트림탭스는 지난달 22일까지 8주간 예금과 머니마켓펀드(MMF)로 간 자금이 주식 펀드 유입액(541억 달러)의 세 배에 가까운 1천434억 달러라는 점을 들어 “로테이션이 분명 진행 중이나 대대적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르다”고 풀이했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주식 시장이 ‘주식시대’의 덕을 볼 수 있을지에도 부정적인 관측이 많다.
EPFR에 따르면 최근 4주간 높은 순유입액을 보인 선진국 주식형 펀드와 달리 신흥국 주식형 펀드에서는 12억3천300만 달러가 빠져나갔으며 유출강도는 0.16%였다.
연간 기준으로 보면 흐름의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올해 1∼7월 신흥국 주식형 펀드에는 34억8천900만 달러만이 유입돼 지난해 총 유입액 504억300만 달러를 따라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에 반해 선진국 주식형 펀드에는 올해 1천677억9천200만 달러가 유입돼 194억 달러가 유출됐던 지난해와 상황이 역전됐다.
특히 선진국의 양적완화 덕분에 풍성한 유동성의 혜택을 누렸던 아시아 주요 신흥국들의 주식시장은 미국 출구전략 관측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양상을 보여 긍정적으로 전망하기가 더욱 어렵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한국, 대만, 인도, 태국 등 7개 아시아 신흥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은 6월 144억 달러를 순매도했다가 7월에는 24억 달러를 순매수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금융완화 정책이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 돈을 거둬들이고, 선진국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책을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 다소 안정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세계 주요 금융기관의 시장 분석가들은 당분간 선진국 증시가 신흥국 증시에 앞서는 추세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데 동의하면서 신흥국에서는 경제 기초가 탄탄한 국가의 증시만 선별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영숙·이지현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아시아에서는 선진국 경기 회복의 수혜가 기대되는 증시를 중심으로 자금이 유입되며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국내 증시에서는 선진국의 경기 회복, 당국의 경기부양 조치,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점차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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