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무효 안 돼 법 사각지대
근친혼 8촌 → 4촌 논의도 제자리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서울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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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촌 이내 근친혼’을 무효로 하는 민법 조항이 올해 말 효력을 잃지만, 이를 대체할 개정안이 아직 국회에 제출되지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8촌 이내 혈족이 혼인신고를 마쳤다면 이를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지는 등 혼란이 예상된다. 앞서 법무부는 근친혼 범위를 8촌에서 4촌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거센 찬반 논쟁이 붙으면서 추진을 멈춘 상태다. 정부나 국회가 신속하게 대체입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8촌 이내 혈족의 혼인은 무효로 하도록 규정한 민법 제815조 2호를 대체하는 개정안은 22대 국회에서 아직 제출되지 않았다. 앞서 헌재는 지난 2022년 10월 이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올해 12월 31일까지만 적용되도록 했다. 따라서 내년 1월 1일부턴 이 조항은 효력이 사라진다. 헌재가 정부와 국회에 2년 넘게 법 개정 시한을 줬지만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에 내년부턴 8촌 이내 혈족이 서로 관계를 몰랐거나 혹은 고의로 혼인신고를 했다면 무효로 할 수 없게 된다. 8촌 이내 근친혼을 ‘금지’하는 민법 809조 1항이 여전히 유효함에도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무효로 돌릴 수 없는 ‘법적 사각지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난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혼인신고를 받는 주민센터 등 행정기관은 혼인 당사자들이 먼저 알리지 않는 한 8촌 이내 혈족인지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법무부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근친혼 금지 제도 개선을 추진해왔으나, 아직 개정안을 제출하지 못했다. 지난 2월 법무부가 ‘혼인 금지 범위를 8촌 이내 혈족에서 4촌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받아본 사실<서울신문 2024년 2월 26일자 10면>이 드러나면서 거센 사회적 논란이 불거진 탓이다. 당시 법무부는 ‘개정 방향이 정해진 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며 진화에 나섰고, 지금도 “아직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유지 중이다.
이처럼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정부와 국회가 기한 내에 개정하지 못해 관련 조항의 효력이 상실된 경우는 10건에 달한다. 아동·청소년 성범죄자를 공무원·군무원에 임용하지 못하도록 한 법 조항이 대표적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 조항을 기한 내에 개정하지 않는 것은 국회가 입법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2024-10-30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