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는 원효(617~686)에게 가르침을 준 고승이 여럿 등장한다. 사복(蛇輻)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원효가 고선사에 주석하던 시절 사복의 어머니를 장사 지내며 “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 그 죽는 것이 괴로우니라. 죽지 말 것이니 세상에 나는 것이 괴로우니라”라고 했다. 그러자 사복은 “말이 너무 번거롭다”면서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괴로우니라”로 고쳐 주었다고 한다.
고선사는 토함산에 있던 사찰이다. 경주 시내에서 대왕암을 향해 토함산을 오르자면 제법 규모 있는 호수가 나타난다. 고선사의 옛터는 덕동댐 건설로 호수 아래 잠겨 있다. 절터는 1975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높이 9m의 삼층석탑은 이때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절터는 동서 100m, 남북 80m에 이른다. 회랑 내부에 금당과 석탑이 나란히 있는 절집은 우리나라에서 고선사가 유일하다. 금당과 회랑의 초석과 장대석, 서당화상비를 받치고 있던 귀부도 모두 삼층석탑 곁으로 옮겨 갔다. 석물들은 지금 박물관 마당 한켠에 모여 있다.
원효의 손자인 중업이 세웠다는 서당화상비에는 대사의 일생이 새겨져 있다. 서당(誓幢)은 원효의 어린시절 이름이었다고 한다. 1914년 고선사 터에서 서당화상비 일부가 발견된 데 이어 1965년엔 멀리 떨어진 동천사 터 주변 농가에서 작은 조각이 추가로 수습됐다.
고선사 터 삼층석탑의 이건(移建) 안이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박물관 동남쪽 끝자락에 있는 석탑을 다보탑·석가탑 복제품이 있는 마당 가운데 야외 전시장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모조품 대신 진품을 상징성 있는 자리에 세우겠다는 구상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옛터 주변에 절터를 복원하는 방안은 더욱 실현이 어려워질 것이다. 토함산 중턱 유서 깊은 절터와 호수에 비치는 우람하면서 균형미 있는 석탑의 그림자는 관광자원으로도 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한 만큼 마음이 엇갈린다.
서동철 논설위원
2024-10-04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