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이 명작이라 이번 편은 폭망…‘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영화잡설]

1·2편이 명작이라 이번 편은 폭망…‘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영화잡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24-07-05 15:04
수정 2024-07-1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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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하늘에 운석 같은 게 잇따라 떨어지고 이어 정체 모를 괴물들이 인간을 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 괴물은 총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외피에 길쭉하고 뾰족한 팔과 다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동차 철판 따위는 우습게 찢어버립니다. 그뿐인가요. 한손으로 자동차를 쳐서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괴물들의 습격에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이 괴물은 ‘데스 앤젤’입니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은 데스 앤젤에 맞서는 인간들의 사투를 그린 영화입니다. 2018년 ‘콰이어트 플레이스’, 2021년 ‘콰이어트 플레이스 2’에 이은 영화지만, 1· 2편에 앞선 이야기를 다루기에 ‘프리퀄’이자, 주인공이 바뀌어 등장한다는 점에서 ‘스핀오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제목대로 이번 영화는 인류를 멸망으로 이끈 데스 앤젤이 출현한 첫째 날을 보여줍니다. 암 환자인 사미라(루피타 뇽오 분)는 병원 환자들과 함께 뉴욕으로 외출합니다. 원래는 안 가려 했는데 ‘가서 피자를 먹고 오자’는 제안에 나섰습니다. 인형극 공연을 보고 돌아가려는 찰나, 상공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데스 앤젤의 습격이 시작됩니다.

이야기를 더 하기 전 우선 전편들을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데스 엔젤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대신 소리에는 굉장히 민감하죠. 1·2편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머리가 마치 꽃처럼 쫙 벌어지면서 인간의 달팽이관을 닮은 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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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재미는 ‘소리를 내면 데스 앤젤이 달려와 사람을 죽인다’는 데 있습니다. 다른 공포영화에서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설정이지요. 1·2편의 주인공은 애보트 가족인데요, 영화는 습격이 시작된 첫날을 보여주고 이어 89일째 가족의 모습을 비춥니다. 이날 가족들이 괴물을 피해 이동하던 중 막내의 장난감에서 소리가 나는 바람에 데스 앤젤에 습격받았습니다. 어린 막내에게 괴물이 달려들고, 아버지인 리가 쫓아가 보지만 참극이 일어나고 맙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472일째, 엄마인 에블린은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는 딸 리건 덕분에 데스 앤젤의 약점도 드러납니다. 그가 낀 인공와우에서 나오는 주파수가 괴물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여기에 소리를 내면 안 되는 상황에서의 출산, 그리고 리건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의 희생과 같은 내용이 가슴을 후벼팝니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로 확인하시고요.

1편에 이어지는 2편은 전편에 비해 이야기 규모를 조금 더 키웠습니다. 그동안 살던 곳은 안전하지 않기에, 에보트 가족은 더 안전한 장소로 떠나기로 합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생존자들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리의 친구인 에밋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괴물을 피해 이동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약탈자 무리가 있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데스 앤젤이 물을 두려워한다는 내용이 추가되면서 이야기 구조도 탄탄해졌습니다.

다시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로 돌아가 볼까요. 이번 영화는 1·2편의 주요 설정을 토대로 합니다. 아수라장이 된 뉴욕 도심에 “절대 소리 내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울려 퍼집니다. 게다가 군대가 맨해튼에서 뭍으로 가는 모든 다리를 폭격으로 끊어버리면서 사람들은 고립되고 맙니다. 데스 앤젤이 물을 싫어한다는 설정도 보여줍니다.

살아남기 위해 홀로 사투를 벌이던 사미라는 우연히 다른 생존자 에릭(조셉 퀸 분)과 만납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도망가려는 시민들과는 반대로, 에릭과 함께 항구가 아닌 반대 방향으로 떠납니다. 어렸을 적 맛있게 먹었던 피자집의 피자를 한 조각 먹겠다는 일념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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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죽음을 앞둔 암 환자의 소박한 소망, 그리고 이를 돕는 조력자의 여정은 결국 영화를 이도 저도 아닌 휴먼드라마로 전락시키고 맙니다. 죽음을 앞둔 사미라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피자 먹으러 가겠다는 행동은, 글쎄요. 솔직히 ‘감정의 과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제가 좀 메마른 사람이긴 합니다만) 우연히 만난 에릭과 찰떡같은 연대도 납득키 어렵고요.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면서 1·2편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점도 아쉽습니다. 결과적으로 데스 앤젤의 습격에 ‘입틀막’ 한 채 피자집을 향해 가는 게 전부입니다. 1·2편을 모두 본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 예고편 만든 사람은 혼 좀 나야 합니다. 블록버스터급 재난 영화처럼 홍보했기에 박진감 넘치는 혈투를 기대했건만, 뜬금없는 감동을 억지로 쥐어짜려 하다 보니 보는 내내 ‘아,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양이의 존재입니다. 주인공 사미라(샘)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은 ‘프로도’로, ‘반지의 제왕’을 보신 분이라면 싱긋 웃음이 날 겁니다. 이 고양이는 이야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프로도가 큰 위기를 부르거나, 반대로 일행을 구하거나 할 줄 알았습니다만 아니더라고요. 다만, 연기를 너무너무 잘합니다. 그리고 사정없이 귀엽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이번 편은 그냥 넘기고, 3편을 기다리겠습니다. 애보트 가족의 처절한 생존기가 기다려집니다. 1·2편에서 데스 앤젤의 약점이 나온 만큼, 인류가 반격에 나서는 내용도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김기중 기자의 ‘영화잡설’은 놓치면 안 될 영화, 혹은 놓쳐도 무방한 영화에 대한 잡스런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격주 토요일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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