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유족들 빗속의 통곡
시청 팀장, 우수팀 상 받은 날 참변
“시력 잃고도 공무원 된 7남매 막내”
승진 축하 위해 모였던 은행원 4명
퇴근하던 50대 가장·31세 공무원도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지하철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 희생자들이 안치된 영등포구 영등포장례식장 앞에서 취재진이 유가족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영등포장례식장에는 사망자 9명 가운데 6명의 시신이 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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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다음날인 2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입구에서 만난 사망자 김모(52)씨의 친형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세찬 장맛비에 뒤섞인 눈물을 연신 닦아 내며 “동생이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눈이 실명되고 장애 등급까지 받았지만 씩씩하게 직장 생활을 잘했다”며 “부모님 기일이나 명절이면 꼬박꼬박 고향을 찾던 막내는 우리 집 ‘비타민’이었다”고 했다.
서울시청 공무원이었던 김씨는 20여년 전 9급으로 공직에 발을 들인 뒤 5급 사무관까지 오른 인재였다. 누구보다 일을 잘하는 사무관으로 평가받으면서 ‘일벌레’라는 별명으로 불렸기에 김씨의 죽음은 더욱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이날 오전 김씨의 딸로부터 직접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고등학교 친구 권모(52)씨는 “누가 뭐라고 해도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친구였다”며 “사고 난 장소가 근무하던 곳 근처라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락했는데 받지 않아 불안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고 당일 김씨가 속한 팀은 ‘이달의 우수팀’과 ‘동행매력협업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서울광장에 차려졌던 이태원참사 분향소 이전과 야외 밤 도서관 행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김씨의 형은 “동생이 낮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한 끝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기억이 선하다”며 “이제는 고생 좀 안 하고 그냥 편안하게 좋은 일만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못다 한 말을 전했다.
서울 영등포 장례식장에도 장맛비를 뚫고 많은 이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사망자 이모(52)씨의 삼촌과 숙모는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알아보기 힘들다고 해 아직 시신 확인은 안 했다”며 “조카의 아이들이 아직 학생인데 어떡하냐”고 했다. 아산병원 소속 파견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던 양모(34)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온 남동생은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양씨의 지인은 “착한 아이였다. 지금은 더 말하기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다.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은 적막 속에 유족들의 울음소리만 새어 나왔다. 서울시청 세무과 직원이었던 사망자 윤모(31)씨는 사고 당일 동료들과 식사를 한 뒤 일찍 집으로 들어가려다 뒤에서 덮치는 차를 피하지 못했다. 윤씨의 동료들은 “고참들도 힘들다고 하는 일을 1년 정도 한 적이 있는데 항상 웃는 얼굴로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며 “인품도 훌륭하고 흠잡을 데가 없었다”고 했다.
궂은 날씨였지만 사고 현장에는 헌화하거나 사진을 찍으며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2024-07-03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