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 금지 철회 전문가 진단
미흡한 현실 인식직구족 고려 못하고 경솔해
부처 이견 무시한 것도 문제
관료사회 규제편의주의
지나치게 높고 협소한 기준
공신력 있는 제품까지 배제
국무조정실 이정원(가운데) 국무2차장 등 정부 관계자들이 1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외직구 관련 추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16일 소비자 안전을 해치는 물품에 대해 ‘원천 차단’이란 표현을 동원해 직구 제한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비판이 들끓자 국무조정실이 19일 “전면 금지·차단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고 20일 대통령실까지 사과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아마추어적인 혼선이 정부의 미흡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직구를 어느 정도나 하는지, 어떤 세대가 많이 하는지, 정책 발표에 어떤 반응이 나올지 종합적으로 검토했어야 했다”며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추진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위해 제품 안전성 우려에 대한 대응책에만 골몰하느라 ‘직구족’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C커머스)이 ‘공습’에 비유되는 속도로 한국 시장에 진출하자 조급함에 서투른 판단을 했다는 비판도 따른다. 강제상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적극 행정’이 강조되면서 내용보다는 타이밍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며 “이해관계자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목소리 큰 사람들의 의견부터 듣고 깊이 고민하지 못한 결과 지탄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소비자 선택권보다는 대한상공회의소 등을 통해 목소리를 키운 기업 보호에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관료사회의 규제편의주의도 지적된다. 최무현 상지대 공공인재학과 교수는 “중국 저가 제품 규제를 위해 조급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며 “규제를 도입할 때는 적정 수준인가를 제일 중요하게 봐야 하는데, 이번엔 기준을 지나치게 높고 협소하게 설정함으로써 미국·유럽 등의 공신력 있는 제품도 직구에서 배제해 반발이 컸다”고 짚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비공식적 안전성 조사만을 기반으로 주요 통상국인 중국을 상대로 직구 금지를 논한 것은 경솔했다”며 “각 부처에서 반대 의견이 없었을 리는 없는데 ‘위’에서 이것을 무시하고 찍어 누른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의대 증원 논란처럼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밀어붙이기가 되풀이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방된 국정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조직이 효율성에 매몰돼 있다는 질타도 나왔다. 강 교수는 “기획재정부의 힘이 세고 국조실에도 기재부 출신이 많아서인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효율성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4차 산업혁명으로 모든 정보를 국민이 공유하는 시대다. 국민 공감대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공공성에 대한 고려가 효율성 못지않게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2024-05-21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