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대행 체제서 판결 선고 전례
대법원 “재판받을 권리 공백 안돼”
대법원. 연합뉴스
9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법원은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전합 심리 진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합 심리는 대법관 각자가 의견을 내고 취합하는 과정인 만큼 재판장인 대법원장이 공석이라도 가능하고 법원조직법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고 해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열흘 전에만 일정을 미리 공지하면 언제든지 전합 심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또 대법관 의견이 압도적으로 일치한 경우 전합 선고도 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부 이견이 있더라도 소수의견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관 의견이 팽팽하게 갈릴 경우엔 선고를 보류해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3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 전합은 6대6으로 의견이 맞설 경우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를 쥔다. 따라서 안 권한대행이 이 역할을 하기엔 부담이 있는 만큼 신임 대법원장 부임 때까진 선고를 미룬다는 것이다.
대법원 측은 “대법원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재판”이라며 “재판의 정상화를 위해 기존 사건들을 포함해 전합 심리를 최대한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이르면 이번 주 대법관회의를 열어 이러한 방침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민복기 전 대법원장의 정년퇴임으로 3개월간 공백이 이어졌던 1978년 12월∼1979년 3월에도 4건의 전합 선고를 내린 전례가 있다. 현재 전합이 심리 중인 사건은 총 5건이다. 손해배상의 기준이 되는 ‘일실 수입’(피해자가 잃어버린 장래의 소득)을 한 달에 며칠치로 계산할지에 관한 소송, 마사지업을 의료법상 안마에서 제외해 비시각장애인에게도 허용할지가 쟁점이 된 사건 등이 심리 중이다. 다만 대법원은 이달엔 전례 등을 고려해 전합 심리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안 권한대행은 지난달 25일 사법행정사무를 다루는 대법관회의를 열어 대법원장 공석 사태에 대한 대법관 의견을 모은 바 있다. 지난 6일에는 전합 심리·선고에 대해 “대행 체제하에서 이뤄진 사례도 있다. 앞으로 검토돼야 할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헌정사상 대법원이 수장 공백에 따라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된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다.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이 정년 퇴임하면서 김두일 대법관이 1957년 12월~1958년 6월 대법원장 직무를 대행한 것이 첫 사례다. 2대 조용순 대법원장이 1960년 5월 임기를 마치고 배정현 대법관이 이듬해 6월까지 권한을 대행한 적도 있다. 이 체제는 역대 최장인 13개월 20일간 이어졌다.
5·6대 민복기 대법원장이 1978년 12월 퇴임한 후 이영섭 대법관이 이듬해 3월까지 권한을 대행하기도 했다. 9대 김용철 대법원장이 1988년 ‘2차 사법파동’으로 물러나자 이정우 대법관은 16일간 권한을 대행했고 11대 김덕주 대법원장이 1993년 부동산 투기 문제로 물러나자 최재호 대법관이 14일간 직을 수행했다.
2023-10-1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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