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8일 경매 일시중단 추진 계획 밝혔지만
하루 뒤인 19일 경매 법정서 피해자 빌라 낙찰
망연자실 피해자 “한 달 뒤면 나앉게 생겼다”
경매 참가자들 “소위 ‘꾼’이 낙찰받았나 의심”
전세사기 피해자 조현기씨가 19일 인천지법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조씨 빌라가 낙찰되면서 다음 회차 때 빌라를 매입하려던 조씨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2023.4.23. 연합뉴스
19일 오전 인천지법 입찰법정 219호 앞에서 만난 전세사기 피해자 조현기(45)씨는 “거주 중인 빌라가 경매에 낙찰됐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전날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지 않도록 경매를 신청한 금융기관에 경매 연기를 요청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날도 경매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한 차례 유찰됐던 조씨 빌라는 결국 경매로 넘어갔다.
조씨는 “이제 일주일이 지난 뒤 내용증명 서류가 올 것이고, 결국 한 달 내에 나가야 한다”며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경매로 돈을 벌고자 하는 그들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미 상처받은 영혼들”이라며 “최소한의 예의라도 (피해자들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는 없었나”라며 원통해 했다.
전국서 모인 전세사기 피해자들
18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국철(서울지하철 1호선) 주안역 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23.4.18 연합뉴스
경매가액을 써내야 하는 오전 11시 20분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입찰법정 양 옆에 위치한 책상에 앉아 가액을 써내려갔다. ‘깡통전세’나 ‘전세사기’에 대한 대화도 일부 오갔지만, 한 참가자는 기자의 질문에 “금액을 써내는 데 참고할 사항이지 똑같은 경매물품일 뿐이다”고 말했다.
입찰 시간이 마감된 후 법원 집행관이 순서대로 경매물품에 대한 개찰을 진행했다. 이날 경매에 오른 물건은 총 73건이었다. 이중에는 ‘건축왕’ 남모씨 등의 전세사기 대상이었던 오피스텔과 아파트 등 11건도 있었다. 11건 중 9건은 이번이 첫 번째 경매로, 감정가의 100%가 최저매각가격으로 정해진다. 입찰자가 없으면 유찰되고 30% 낮은 최저 매각가격으로 다음 번 경매에 올라온다.
조씨가 살고 있는 H빌라는 이번이 두 번째 경매로 감정가 1억 4900만원보다 30% 낮은 1억 430만원이 최저 매각가격이었다. 이번에 유찰되면 다음 회차 때 돈을 융통해 빌라를 매입하려고 했지만 이날 1억 1200만원에 빌라가 낙찰되면서 조씨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 공간
18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국철(서울지하철 1호선) 주안역 광장에 전세사기 피해를 겪다 숨진 20∼30대 청년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2023.4.18 연합뉴스
경매에 참가했던 중개사들과 경매업 종사자들은 해당 물건이 소위 ‘꾼’이 낙찰받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중개사는 “사실 물건 자체만 놓고 보면 가격적으로나 가치로서나 매력이 있다고 보기 힘든 물건”이라며 “경매 받으면 전세 사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지니 월세를 주거나 재판매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