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예기획사 쟈니스 사무소 본사.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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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연예계에서 ‘쟈니스 사무소’는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남자 연예인을 전문으로 육성하는 쟈니스 소속 대표 그룹이 기무라 타쿠야 등이 활동하는 스맙(SMAP)이다.
쟈니스의 설립자는 1931년생 쟈니 기타가와. 회사 이름은 그의 영어 애칭에서 따왔다. 기타가와는 지난 2019년 7월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일본 연예계의 전설인 그의 어두운 뒷모습이 영국 BBC 다큐멘터리 ‘두 포식자: J팝의 비밀 스캔들’을 통해 낱낱이 폭로됐다. 기타가와가 오랜 세월 동안 소년들을 성적으로 착취했다는 것이다.
7일(한국시간) BBC는 다큐멘터리 내용을 토대로 기타가와가 어떤 식으로 어린 소년을 비롯한 아이돌 지망생들을 성적으로 착취했는지 보도했다.
제작진이 만난 아이돌 지망생 하야시(가명)는 15살 때 쟈니스 사무소에서 이력서를 보냈고, 오디션장에서 기타가와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일주일 뒤 하야시는 기타가와로부터 자택으로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수많은 소년들이 함께 머무르는, 일명 ‘기숙사’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하야시는 “기타가와가 오더니 ‘가서 목욕을 해라’라고 했다”면서 “기타가와는 내가 인형인 것처럼 온몸을 씻겼다”고 털어놨다. 구강성교도 이어졌다.
하야시는 이후에도 학대가 이어졌다며 다른 소년들 역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야시는 “모두들 내게 ‘참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어’라고 했다”면서 “그 누구도 떠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2002년에 쟈니스 소속으로 10년간 백댄서로 활동한 류도 BBC에 처음으로 기타가와로부터 당한 일을 털어놨다. 류는 “침실로 들어가니 기타가와가 들어와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하더니 내 어깨를 잡은 손이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면서 “어느 순간 선을 넘는 것 같아 ‘더는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고, 기타가와는 ‘미안해, 미안해’라며 다른 방으로 갔다”고 전했다.
당시 류는 16살, 기타가와는 70대였다.
기타가와의 소년 성 착취 문제가 이번에 처음 드러난 일도 아니었다. 1999년 일본의 유명 시사주간지 주간문춘은 기타가와에게 성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10대 소년을 취재해 보도한 적이 있었다.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이 추가로 나왔고, 이들이 진술이 서로 일치해 기자들은 기타가와 자택 내 ‘기숙사’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주간문춘 기사에 따르면 피해자 중에는 12살 소년도 있었다.
심지어 ‘기숙사’가 아닌 연습생의 집에서 성관계를 가진 일도 있었다. 이 연습생은 “부모님이 내 방에 기타가와의 잠자리를 마련해뒀고, 그날 밤 부모님은 바로 옆 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다”고 주장했다.
쟈니스 사무소가 주간문춘을 고소했고 4년간 이어진 법정 다툼에서 학대 증언이 나왔다. 도쿄고등법원은 주간문춘 기사에 실린 주장 10건 중 기타가와가 소속사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주장을 포함한 총 9건이 진실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 대중은 침묵했고, 이 명예훼손 사건이 형사재판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기타가와는 2019년 사망할 때까지 기소되지 않았고 사장직도 유지했다.
당시 취재기자 중 한 명인 나카무라 류타로는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밟아 뭉개진 것에 매우 화가 난다”며 “지난 23년간 이 때문에 절망했다”고 BBC 다큐멘터리 제작진에게 말했다.
BBC는 일본 사회가 이상하리만치 기타가와의 성 학대 사실에 침묵한다고 지적했다. 기타가와가 죽는 날까지 화려한 명성을 유지했으며 사망 후에도 여전히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다.
BBC 취재진이 도쿄에서 만난 한 청년은 “기타가와는 신”이라고 말했으며 많은 일본인들이 이에 동의한다고 한다.
BBC는 이러한 침묵의 배경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했다.
일단 일본 언론과 ‘기타가와 제국’이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이다. 쟈니스 사무소 소속 연예인들을 통해 시청자와 독자, 청취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데 이는 언론의 광고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쟈니스 소속 그룹을 홍보해주면 더 유명한 아이돌을 섭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반대로 쟈니스나 소속 연예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도하면 이러한 기회를 잃는다는 뜻이다.
법률적인 한계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성관계 동의 연령이 만 13세에 머물러 있으며 2017년 이전까지 남성은 강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성적 학대에 대한 의혹 제기가 타인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라며 오히려 피해자나 문제 제기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본 내 인식도 영향을 끼쳤다고 BBC는 분석했다.
실제로 앞서 기타가와의 성적 행위를 거부했던 류 역시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가 멋진 사람이고 개인적으로 큰 은혜를 입었다는 이유다.
BBC 취재진이 만난 다른 연습생들도 기타가와를 옹호했다.
BBC 측의 논평 요청에 현재 쟈니스 사무소를 이끌고 있는 줄리 후지시마 사장은 “전 대표(기타가와)가 사망한 이후 본사는 투명한 조직 구조를 구축하고자 전문가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고 올해 이를 발표하고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을 뿐 기타가와의 성 학대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후지시마 사장은 기타가와의 조카다.
성 학대 피해 남성들을 돕는 전문가는 “성 학대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매우 혼란스럽고 복잡한 트라우마를 겪는다”면서 “그루밍(길들이기) 범죄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회복의 첫 단계는 학대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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