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작 논란 아동문학 거장 로알드 달의 작품 원본으로도 출간

개작 논란 아동문학 거장 로알드 달의 작품 원본으로도 출간

임병선 기자
입력 2023-02-25 08:38
수정 2023-02-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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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미디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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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마틸다’ 등 영국 아동문학 거장 로알드 달의 작품들이 옛 시대의 표현 수정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 끝에 원본으로도 남게 됐다.

펭귄 출판사 측은 24일(현지시간) 로알드 달의 작품 속 표현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살린 ‘로알드 달 클래식 컬렉션’을 출간하겠다고 밝혔다. 출판사는 “최근 논쟁을 들으면서 달 작품의 특별한 힘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최근 출판사가 달 작품 속 표현을 요즘 잣대에 맞춰서 바꾼 것이 알려지면서 문학계를 넘어 사회 각계에서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슬람에 대한 모욕적 표현으로 평생 암살 위협에 시달려 온 논쟁적 작가 살만 루슈디가 ‘이상한 검열’이라며 반발했고, 판타지 소설 ‘황금 나침반’의 작가 필립 풀먼은 문제가 있으면 저절로 잊히게 해야지 임의로 손을 대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그런 식으로 수정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커밀라 왕비 배우자는 전날 행사에서 작가들을 만나 “표현의 자유나 상상을 제한하는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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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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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산하 아동문학 출판사 퍼핀과 저작권 관리업체 로알드 달 스토리컴퍼니는 2020년부터 전문가들과 함께 달의 작품 속 표현을 현재 기준에 맞춰 바꿨다. 이들은 외모, 성, 인종 등과 관련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표현을 찾아내 ‘뚱뚱한(fat)’과 ‘못생긴(ugly)’ 등을 지우는 등 수백 군데를 고쳤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수정된 버전에서는 캐릭터 오거스터스 그루프에게 ‘뚱뚱한’ 대신 ‘엄청난(enormous)’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소인족 움파룸파를 수식하는 형용사는 아기나 작은 동물 등에 주로 쓰이는 ‘아주 작은(tiny)’ 대신 객관적 표현인 ‘작은(small)’으로 바뀌었고, 성별도 ‘남자(men)’로 적혔던 것을 중성적 표현인 ‘사람(small people)’으로 수정했다.

뮤지컬로도 옮겨진 ‘마틸다’에서의 악역 트런치불 선생을 표현하는 ‘가장 무서운 여성(female)’은 ‘가장 무서운 여자(woman)’로 대체됐다. 남성 작가인 러디어드 키플링의 소설을 즐겨 읽는 주인공으로 묘사됐던 마틸다는 대표적인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의 책을 대신 손에 쥐었다.

이 밖에도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에 나오는 주인공 미스터 폭스의 아들들은 딸들로 바뀌었고,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의 ‘클라우드멘(Cloud-Men)’도 ‘클라우드피플(Cloud-People)’로 바뀌었다.

아예 삭제돼 버린 표현들도 적지 않다. ‘더 트위츠(The Twits·멍청씨 부부 이야기)’ 속 ‘이중 턱(double chin)’ 표현이나 로알드 달이 자주 사용한 표현 ‘미친(crazy·mad)’도 지워버렸다. 심지어 ‘검은(black)’, ‘하얀(white)’ 등의 수식어도 다수 삭제됐고, “하얗게 질려버렸다”는 표현 역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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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초판본과 영화에 등장했던 황금계란. AFP 자료사진
‘찰리와 초콜릿 공장’ 초판본과 영화에 등장했던 황금계란.
AFP 자료사진
때에 따라서는 작품에 한 문장을 통째로 추가하기도 했다. ‘더 위치스(The Witches·마녀를 잡아라)’에서 마녀가 가발 아래 대머리를 숨기고 있다는 대목 뒷부분에 “여자들이 가발을 쓰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이는 식이다.

클래식 컬렉션에는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Matilda’ ‘The BFG, Fantastic Mr Fox’ ‘George‘s Marvellous Medicine’ ‘James and the Giant Peach’ ‘The Witches’ ‘The Twits’ ‘The Giraffe, the Pelly and Me’ ‘The Enormous Crocodile’ ‘Esio Trot’ ‘Billy and the Minpins’ ‘The Magic Finger’ ‘Charlie and the Great Glass Elevator’ ‘Danny the Champion of the World’ 등이며, 연내 출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국의 아동문학 작가이기도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반유대주의와 여성혐오, 인종차별 등 문제로 비난을 받아왔다. 지난 2020년에는 할리우드 영화 ‘더 위치스’에서 마녀를 연기한 앤 해서웨이가 그로테스크한 손가락 분장을 한 채 등장하면서 장애인 비하 논란이 일었고, 그의 원작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같은 해 달의 유족은 “달의 발언으로 인해 입은 상처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사과했다.

달 작품의 저작권은 2021년 넷플릭스가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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