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현의 이방사회] 굿바이 산타클로스/일본 데쓰야공무점 대표

[박철현의 이방사회] 굿바이 산타클로스/일본 데쓰야공무점 대표

입력 2022-12-26 20:14
수정 2022-12-27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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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 일본 데쓰야공무점 대표
박철현 일본 데쓰야공무점 대표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편지 쓰느라 분주해진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산타 선물 때문이다. 내년 대입 수험생이 되는 큰아이는 편지도 안 쓰고 선물을 굳이 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산타 선물은 중학생까지라고 동생들을 세뇌시킨다. 고등학생은 애가 아니라 어른이고 산타 선물은 어린이한테만 주는 거니 받아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거다. 엄밀히 보자면 만 18세부터 성인이지만 굳이 내가 나서서 반론을 펼 필요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중 3인 둘째는 산타 편지 역사상 가장 길고 간절한 메시지를 담아 트와이스 앨범을 부탁한다고 써 놨다. 성적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렸고, 학년위원으로 학우들을 잘 이끌었으며, 무엇보다 “내년부턴 선물을 못 받으니 유종의 미를 거둬 달라”고 적었다. 근거가 탄탄하다. 읽자마자 바로 아마존에 주문했다.

문제는 남자아이들이다. 일단 편지가 성의없다. 셋째의 경우 선물 받을 이유는 아예 없고 그저 백투더퓨처 들로리안 레고가 필요하다는 거다. 검색을 했는데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한국 돈으로 26만원이나 한다. 막내도 마찬가지다. 받아야 할 이유는 생략한 채 1순위 노트북, 2순위 게임기라 써 놨다. 이것도 몇십만원 한다. 편지도 편지지만 비용 문제로 도저히 사줄 수가 없어 5000엔짜리 슈퍼마리오 손목시계를 골라 아마존 주문을 넣었다.

며칠 후 운명의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새벽녘 거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잠이 깬다. 방문을 열어 보니 거실 소파 앞에서 형제가 나란히 앉아 손목시계를 앞에 두고 훌쩍거리고 있다. 짐짓 모른 체하며 달랜다. ‘산타가 배달 주문이 너무 많이 들어와 헷갈렸나?’로 시작되는 연기를 선보인다. 애들 우는 소리에 둘째가 일어난다. 그냥 지나치면 될 것을 “어? 내 건 다 왔는데?”라며 굳이 한마디한다. 그 말에 울음소리가 더 커진다.

첫째도 일어난다. 시끄러워 짜증이 났는지, 잠에서 덜 깬 건지 모르겠지만 그의 입에서 절대 해선 안 될 폭탄 발언이 터져 나온다. “야, 니네도 생각 좀 하고 살아. 아빠가 맨날 현장일 하면서 고생하는데 몇만엔짜리를 아무렇지 않게 사 달라 하는 게 말이 돼? 그러는 니넨 아빠 엄마한테 크리스마스 선물, 아니 편지라도 쓴 적 있냐?”

고맙긴 하다. 하지만 니가 이래 버리면 면면이 이어 오던 산타클로스의 신화가 깨진다. 당황해서 버벅거리는 그 순간 울던 셋째가 나에게 안겨 오며 말한다. “아빠 미안. 이 시계도 검색해 보니까 하나에 만엔 정도 하던데 고마워.”

지난 십여년간 이어 왔던, 다 알지만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크리스마스의 거대한 연극이 끝나는 순간이다. 시계는 특가 사이트에서 반값에 구매했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감동은 조금 더 이어진다. 큰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손수건을 나와 아내에게 건네준다. 처음 받아 본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이번엔 내가 눈물이 핑 돈다. 상황 파악이 덜 된 막내만 “아빠가 산타? 근데 아빤 왜 울어?”라며 혼란스러워하지만 뭐 아무래도 좋다. 아무튼, 굿바이 산타클로스.
2022-12-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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