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을 공개했다. 문화재청 제공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달력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문화재 명칭은 한글 맞춤법 기준)가 국내로 돌아왔다. 관련 유물이 많지 않은 데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최후에 대한 진술도 있어 이순신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을 종결할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를 공개했다. 유출 경로는 불분명하지만 일본인 소장자가 2년 전 경매를 통해 사들였고, 김문경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지난 5월 문화재청과 재단 측에 관련 정보를 알리면서 존재가 드러났다. 재단은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독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수차례 면밀히 검토한 끝에 복권기금을 활용해 지난 9월 국내로 유물을 들여왔다.
‘대통력’은 오늘날 달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책자 형태로 돼 있어 자신의 일정이나 감상을 적어 두곤 했다. 유물의 크기는 가로 20㎝, 세로 38㎝로 흔히 쓰는 A4종이(가로 21㎝·세로 29.7㎝) 보다 조금 긴 편이다. 이번 유물에도 여백에 묵서(먹물로 쓴 글씨)와 주서(붉은색 글씨)로 그날의 날씨, 일정, 병세와 처방 등을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확인된 것만 7~8종의 술 제조법도 담겨 있다.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표지. 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환수한 유물은 여러 면에서 가치가 높다. 우선 경자년(1600년) 대통력은 처음으로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압송됐던 강항(1567~1618)의 귀국을 포함해 경자년에 있었던 여러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애선생연보’에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 포함된 것은 물론 류성룡의 종손가에서 소장한 보물 ‘유성룡 종가 문적’에도 없는 경자년 기록을 찾았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특히 가철(책의 원표지가 없어 종이 등으로 임시로 매어 둔 형태)된 표지에는 이순신이 전사한 상황이 묘사돼 있다. 총 83자가 남아 있는데 이순신의 자인 ‘여해’라는 글자가 등장해 이순신의 죽음과 관련한 내용임을 알려 준다. 노승석 소장은 “자살설, 은둔설 등 이순신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도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경자년의 24절기 일시를 표기한 부분(우측면)과 연신방위지도 부분(좌측면). 문화재청 제공
가치가 비슷한 유물로는 보물인 경진력(1580) 대통력이 있어 향후 보물로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서애 선생의 기록뿐 아니라 경자년에 발생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며 “향후 기록문화 유산 연구 및 활용에도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화재청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유물을 보관해 연구·전시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