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수연 55세로 별세
뇌출혈로 의식 불명… 끝내 숨져‘씨받이’ 등 작품으로 월드스타
베니스 등 유수 영화제서 수상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원조
유작 ‘정이’ 공개 앞두고 떠나
강수연이 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빈소에 마련된 영정 사진 속에서 다소곳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구본창 작가가 찍은 사진이다.
고강수연배우장례위원회 제공
고강수연배우장례위원회 제공
지난 5일 뇌출혈로 쓰러진 강수연은 병원으로 옮겨져 의식불명 상태에서 치료를 받았다. 온 국민이 쾌유를 기원했으나 7일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55세를 일기로 숨졌다.
강수연은 1980~9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한국 영화를 세계 무대로 이끈 ‘한류 스타’였다.
1987년 12월 제26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에 함께 출연한 이영하(왼쪽)와 함께 남녀주연상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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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배우로 사랑받던 강수연은 손창민과 함께 출연한 KBS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86)를 통해 하이틴 스타로 입지를 다졌다. 이 인기에 힘입어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2’(1985)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성인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스무 살 때인 1987년에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등 무려 6편에 달하는 주연작이 개봉하며 일찌감치 전성기를 열었다.
임권택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에서 고인이 연기한 순녀가 비구니가 되기 위해 머리를 깎는 장면.
태흥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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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경마장 가는 길’, ‘베를린 리포트’(이상 1991) 등 코리안 뉴웨이브 작품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한국 영화 부흥기의 중심에 선 강수연은 충무로에서 ‘흥행 보증 수표’로 통했다. ‘그대안의 블루’(1993)에서는 국내 최초로 억대 출연료(2억원)를 받는 기록을 썼다. 페미니즘 계열로 분류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에서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2001년에는 SBS 드라마 ‘여인천하’의 주인공 정난정 역할을 맡아 오랜만의 안방극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최고 시청률은 35%.
2015년 7월 부산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에 선출된 고인이 소감을 밝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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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은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SF 영화 ‘정이’를 통해 복귀를 앞뒀으나 유작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국내 영화계와 영화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22-05-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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