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아닌 사진작가로 첫 개인전
유령 연상케 하는 모로코 파라솔 등전 세계 사물·풍경 담은 30여점
“관람객도 피사체와 일대일로 대면
각자 감정 생각… 상상력 자극 되길”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은 해 본 적이 없고, 평소에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는 박찬욱 작가는 전시장에도 카메라를 가져왔다.
지난 1일 부산에서 영화감독이 아닌 사진작가 박찬욱을 만났다. 이날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그의 사진전 ‘너의 표정’이 개막했다. 박찬욱은 그동안 자신의 사진 작품을 틈틈이 대중 앞에 내보여 왔다. 영화 ‘아가씨’의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들로 ‘아가씨 가까이’라는 사진집을 냈고, 동생 박찬경 작가 등 다른 창작자들과 그룹전을 수차례 열었다. 서울 용산 CGV아트하우스 ‘박찬욱관’에선 정기적으로 그의 새로운 사진을 만날 수 있다.
같은 제목의 사진집 출간에 맞춰 처음 상업화랑에서 여는 이번 개인전은 사진작가로서의 박찬욱 고유의 시선과 내면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지난 10여년간 세계 각국의 사물과 풍경을 찍은 사진 중에서 고른 출품작 30점은 전시 제목처럼 저마다 어떤 ‘표정’들을 지니고 있다. 유령들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모로코 호텔의 흰 파라솔들, 남성의 옆얼굴을 닮은 변산반도의 바위산, 촬영 당시 지쳐 있던 작가 자신의 감정이 투영된 듯한 대기실의 낡은 소파 등 평범하고 예사로운 일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특별한 순간들이다.
그는 “주변의 모든 사물, 풍경과 어떤 교감을 한다는 의미에서 ‘표정’이란 제목을 붙였다”면서 “관람객도 피사체와 일대일로 대면하면서 각자의 감정을 생각해 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박찬욱 ‘Face 16’ 국제갤러리 제공
박찬욱 ‘Face 6’ 국제갤러리 제공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성향 탓에 가고 싶었던 영화과 진학을 포기했던 그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반열에 오른 지금도 여럿이 함께하는 영화 작업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촬영이나 홍보 차 해외에 나갈 땐 항상 혼자서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거리로 나가 셔터를 누른다.
“영화는 아무리 오래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도 상처 줄 때가 있어서 힘들어요. 몇십억, 몇백억 큰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무서운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사진은 저 혼자 책임지는 일이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으니 참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요. 영화 일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전시는 12월 19일까지.
2021-10-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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