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 문양 닮은 김환기 ‘점화’…현대미술에 깃든 한국미 DNA

분청사기 문양 닮은 김환기 ‘점화’…현대미술에 깃든 한국미 DNA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21-07-07 16:50
수정 2021-07-0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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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8일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개막
국보 등 문화재 35점, 근현대미술품 130여점
시공 초월한 한국미 원형 찾는 통섭형 전시 눈길

김환기의 점화 ‘‘19-Ⅵ-71 #201’ 양 옆으로 15세기 분청사기인화문병이 나란히 놓인 전시장 모습.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김환기의 점화 ‘‘19-Ⅵ-71 #201’ 양 옆으로 15세기 분청사기인화문병이 나란히 놓인 전시장 모습.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분청사기인화문자라병. 조선 15세기. 가나문화재단 소장
분청사기인화문자라병. 조선 15세기. 가나문화재단 소장
김환기의 추상회화 ‘전면점화’ 양옆에 15세기 분청사기인화문병 두 점이 나란히 놓였다. 무수한 점들이 만들어 내는 역동성과 조형미가 심오한 흡인력을 발산하는 1971년작 ‘19-Ⅵ-71 #201’이다. 그런데 점의 형태와 배열이 분청사기에 새겨진 문양과 놀랍도록 닮았다. 500년 시공간을 뛰어넘은 문화재와 현대미술의 조응을 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과거 없는 오늘은 없고, 현재는 미래의 전통이 된다. 앞서 살아간 이들이 남긴 예술품이 박제된 유물로 남지 않고,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끊임없이 현재로 소환되는 이유다. 국립현대미술관이 8일 덕수궁관에서 개막하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은 문화재와 근현대미술의 동시 진열을 통해 한국의 미를 재조명하는 보기 드문 통섭형 전시다.

‘한국의 미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 한국미의 원형을 탐색하고, 그것이 어떻게 계승·발전되어 왔는지를 흥미롭게 펼친다. 이를 위해 국보 기마인물형토기 주인상, 보물 서봉총 신라금관을 포함한 문화재 35점, 근현대미술 130여점, 자료 80여점을 모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문화재를 본격적으로 전시하는 건 처음이다. 특히 근현대미술 전시작에 이건희 삼성회장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1448점 가운데 이중섭의 ‘은지화’ 1점, 도상봉의 ‘포도 항아리가 있는 정물’, ‘정물 A’ 2점, 박영선의 ‘소와 소녀’ 등 4점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중섭 ‘은지화’, 1950년대, 은지에 새김, 유채, 15.1×8.1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중섭 ‘은지화’, 1950년대, 은지에 새김, 유채, 15.1×8.1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도상봉, ‘포도, 항아리가 있는 정물’, 1970, 캔버스에 유채, 24.4×33.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도상봉, ‘포도, 항아리가 있는 정물’, 1970, 캔버스에 유채, 24.4×33.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전시는 고유섭, 최순우, 김용준 등 근대 미학자들이 연구한 한국미 이론을 토대로 대표 문화재 10점을 선정하고, 이를 ‘성(聖), 아(雅), 속(俗), 화(和)’ 등 네 개 키워드로 나눠 문화재와 근현대미술품을 함께 소개한다.

종교적 성스러움과 숭고함의 가치를 조명하는 1부에선 고구려 고분벽화, 석굴암, 고려청자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천상세계에 대한 염원과 석굴암에 투영된 깨달음에 대한 갈망은 이숙자·박노수의 회화와 권진규의 조각으로 이어졌다. 고려청자의 뛰어난 장식 기법과 도상은 이중섭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고려시대 ‘청자상감 포도동자문 주전자’에 새겨진 천진난만한 표정의 동자들은 이중섭이 그린 ‘봄의 아동’(1952~1953)과 구도가 유사할 뿐 아니라 청자의 음각 기법처럼 보이는 윤곽선에서도 닮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중섭 ‘봄의 아동’ 1952~1953. 종이에 연필, 유채. 32.6cm ×49.6cm, 개인 소장
이중섭 ‘봄의 아동’ 1952~1953. 종이에 연필, 유채. 32.6cm
×49.6cm, 개인 소장
고려시대 ‘청자상감 포도동자문 주전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청자상감 포도동자문 주전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맑고 바르고 우아하다’를 주제로 한 2부에선 해방 이후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대항으로 한국미술 정체성 찾기에 몰두했던 시기에 조선 백자가 지속적으로 창작의 원천이 돼 온 과정 등을 살펴본다. 도자기 애호가였던 도상봉은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정물화를 많이 남겼다. 작가가 실제 작품 소재로 사용했던 도자기들이 전시장에 나란히 자리해 감상의 깊이를 더한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전통과 맥이 닿는 단색화가 윤형근의 ‘청다색’, 이철량의 ‘도시 새벽’도 눈길을 끈다.
겸재 정선, ‘박연폭’. 조선 18세기. 개인 소장
겸재 정선, ‘박연폭’. 조선 18세기. 개인 소장
윤형근 ‘청다색’ 1975~1976.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윤형근 ‘청다색’ 1975~1976.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각각 이종상의 ‘장비’, 천경자의 자전적 여인상 ‘탱고가 흐르는 황혼’과 조응시킨 3부도 흥미롭다. 마지막은 1990년대 이후 달라진 한국미의 변화에 주목한다. 특히 오세창, 전형필, 나혜석, 백남준 등 100년에 걸친 한국미술계 인물들을 흑백사진처럼 한 화면에 담은 조덕현의 가로 8.3m, 높이 3.5m 초대형 회화 ‘오마주 2021-Ⅱ‘는 전시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10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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